재경원의 정책방향이 급선회하고 있다.

시장경제원리만 줄곧 외치던 강경식 부총리가 뒤늦게 연쇄부도 진화에
나섰다.

"흑자기업의 어음은 막아달라. 자금이 모자란다면 한은자금이라도 풀어
지원하겠다"는 것이 갑자기 달라진 그의 주문이다.

21일 강 부총리는 은행장들과 종금사 사장단을 조찬과 오찬에 잇달아
초청해 정부의 이같은 방침을 공식선언하고 금융기관들의 협조를 당부할
계획이다.

그동안 정부가 대외적으로 내세워온 "부도와 자금난은 기업의 문제일 뿐
정부가 관여할수 없다"는 기존의 논리를 완전히 뒤집은 셈이다.

구체적으로 은행신탁은 종금사가 매입한 어음의 만기도래시 만기를 연장해
줄 것,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흑자기업이 부도나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
등이다.

강 부총리는 이같은 나름의 기준을 정해 금융기관들의 어음할인과 연장을
독려하되 이 때문에 자금난에 봉착한 금융기관이 있다면 별도의 한은 특융을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조찬과 오찬 모임에서 각각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의 이같은 방향 선회에 따라 당장 자금난에 봉착해 있는 해태 뉴코아
등 극히 일부 기업들이 우선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뉴코아에 대해서는 정부의 조찬 모임이 전해진 20일 오후 은행장들이 긴급
모임을 갖고 일단 회사를 살리는 방향으로 논의를 했고 해태 역시 자금지원
을 통해 살리는 쪽으로 진전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로 20일 10개 뉴코아 채권은행장들의 모임에는 재경원의 윤증현
금융정책실장이 직접 참석해 뉴코아를 지원해 주는 방향으로 행장들의
의견조율을 유도하기도 했다.

종전의 ''절대 불개입''이 ''직접개입''으로 급반전한 것이다.

강경식 부총리가 이처럼 입장을 바꾼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살아남는 기업
이 없을 것이라는 뒤늦은 현실 인식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일련의 급박한 현실이 그동안 쉴새 없이
정부를 몰아쳤다.

지난 17일에 개최된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물론이고 강부총리의 소위 "지방
강연행차"에 대한 세간의 비난여론,연이은 증권시장의 대폭락, 태일정밀 등
중견기업의 부도사태등이 연달아 터져 나왔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기아해법을 둘러싸고 시장경제 원칙론을 주창할 때만
해도 사정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연쇄적인 파문으로 경제가 이처럼
악화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주가의 대폭락, 환율의 급등, 외국인들의 매도러시, 중견기업으로의
부도확산등 일련의 사태가 걷잡을수 없이 돌아가자 정부로서도 기존 입장을
유지할수 만은 없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여당의 증시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정책불신 상황으로까지 확산되자 뒤늦게 자세를 고치게 됐다.

정부의 이같은 입장 선회가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 질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물론 시장심리의 안정에는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직적인 시장관리에서 초래된 후유증을 회복시키려면
손에 잡히는 후속대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정규재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