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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직칼럼] 되살아난 문화재 .. <출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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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밑에 자리잡은 인각사에서는
    제708주기 일연선사 추모다례제가 올려졌다.

    아마 벽촌인 이곳에 군악대와 합창단이 동원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서 온 500여명의 참배객이 붐빈 것도 예삿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때가 때인지라 내로라는 정객들이 보낸 화환들이 제단을 장식했다.

    매년 지내는 제사지만 올해 이처럼 성대했던 것은 자칫하면 수몰돼 버릴뻔
    했던 "삼국유사의 산실"이 되살아난 기쁨이 겹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연선사(1206~1289)가 5년동안 주석하면서 "삼국유사"를 썼다는
    인각사가 고로댐 개발계획에 포함돼 수몰위기에 빠졌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다시한번 정부의 저돌적 개발정책에 분개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곳은 보물 제428호로 지정돼 있는 일연선사의 부도와 보각국사탑비가
    있고 절터도 사적 제374호로 지정돼 있는데 그 일대를 수몰시키겠다는
    계획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든 파헤치기만 하면 문화재가 나와 "지하박물관"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경주땅 위로 고속전철을 끌어들이고 경마장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정부의 처사를 본 뒤라서 이제 일연선사의 유적지인 인각사도 사라지고
    말겠구나 하고 체념한 터였다.

    그런데 최근 건교부가 고로댐 건설계획에서 인각사가 수몰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밖의 방침을 통보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번에 인각사에 대한 조치는 김영삼정부가 그동안 펼처욘 문화재
    보호행정중에서 제일 잘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고로댐반대 추진위원회의 유적보호여론이 주효했던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일연선사 추모다례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불교의식에 따라 엄숙하게
    진행됐다.

    일연선사 영정앞에 다를 올리고 헌화를 한 참배객들은 일연선사가
    인각사에 되돌아 온듯 기쁨에 가득차 보였다.

    그리고 모두 그의 중심 사상인 "자주정신과 인간성 회복"이라는 명제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뜻깊은 기회를 가졌다.

    역사는 그 시대의 소산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역사가의 저술은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에 따라 성립된 시대
    정신의 표현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이 살았던 고려말의 시대정신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일연이 태어난 때는 무신란이 일어난지 30여년이 지나 부정과 불법이
    자행되고 수탈당한 농민들의 반란이 연이어 일어나던 때였다.

    그런 와중에서 그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생애의 중반이후부터 몽고족의 침입으로 최씨정권이 백성을 남겨둔 채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자신들의 안일만을 찾고 있던 상황에서 살았다.

    만년에는 몽고와 타협한 고려가 자주성이 전혀 없어져 수탈만 당하는
    상황에서 보냈다.

    이런 시대상황속에서 살았던 일연선사는 "삼국사기"와 함께 한국의 양대
    고전의 하나인 "삼국유사"에서 자주정신과 인간성회복을 외치고 있다.

    그는 중국의 국가시조나 우리나라의 국가시조는 동등해야 한다는 생각을
    "삼국유사"의 첫머리에 밝히고 ''고조선''의 단군을 비롯 신라 백제 고구려
    가락국 시조의 설화들을 수집해 있는 그대로 실었다.

    불교뿐만 아니라 무교 도교 등 타종교의 내용도 실었고 귀족층은 물론
    서민이나 노비도 소재로 삼았다.

    1백30여 항목이나 되는 이야기 가운데 설화를 인용한 것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역사는 오랫동안 설화라는 형태로 유지돼 온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삼국유사"가 고대의 역사 문학 종교 등 문화전반을 폭넓게 담고 있는
    민족지로 평가받는 까닭도 유교의 합리주의적 역사관에 빠져 정치사가
    중시된 "삼국사기"와는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원로 사학자 이기백 교수가 지적했듯 "삼국사기"
    보다는 오히려 "삼국유사"가 현대에서는 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우리나라의 역사, 그중에서도 정신사에 속하는 불교사를 통해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는 새로운 힘을 찾아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일연선사는 국존으로 추대된 뒤에도 왕의 곁에서 10개월을 채있지 못하고
    인각사로 내려와 노모가 9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극진하게 봉양하며
    수행하다가 84세로 입적했다.

    신법타 은해사주지는 다례제 추모사에서 "일연선사가 살던 시대와 지금의
    우리 상황이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자주정신과 인간성을 잃어버린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불계와 생계, 승속이 다를 것이 없다지만 "다이너스티"라는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례제에 참석한 어떤 스님은 일연선사의 사상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한국불교계가 되살아난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각사를 얼마나 잘 가꾸어
    가는지 아무래도 기다려가며 눈여겨 보아야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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