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우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장>

국산 제품의 경쟁력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신발이나 섬유는 "한때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이었다"는 식으로 회고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뿐만 아니라 전자제품이나 생활용품의 경쟁력도 급격하게 떨어져
해외시장에서는 물론 내수에서 조차 수입품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입품의 국내시장점유율은 곧 그만큼의 국산품 퇴장을 의미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 팔리는 전기면도기의 81%, 믹서기의 63%가 외산인데다
커피메이커의 95%,계산기는 1백%가 외제 수입품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얼마간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수입품의 급격한 내수잠식현상은
산업의 전분야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상품이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제전쟁에서 백기를 들고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문제는 디자인이다.

오늘날 일부 첨단분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생산기술이 평준화되어
이제 소비자들은 품질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디자인시대가 된 것이다.

세계무역의 흐름도 크게 바뀌었다.

노동집약적이고 대량생산체제하에서 생산되는 저렴한 상품보다는
소비자의 개성과 기호를 존중하는 소량 다품종의 고급화된 상품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의미를 일찍이 예견하지 못하고 물량공세에
주력하면서 허둥대 왔다.

오늘날 한국의 디자인은 일본과 유럽 미국에 비해 원천적으로 미약하고
경쟁국인 대만 싱가포르 등과는 품목에 따라 우열을 가려야 하는 입장에
있다.

우리의 디자인 수준이 경제발전 수준을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디자인분야가 투자대상으로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디자인개발에 소홀한 결과 사라지는 상품은 늘어가고
대체할 새로운 상품이 없어 고민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앞에서 섣부른 비교우위론은 설득력이 없다.

경쟁력이 없으면 수입해다 쓰고 대신 우리가 더 싸게 잘 만드는 제품을
수출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일본은 무엇 때문에 우리가 포기한 소형가전제품 시장에 아직도
집착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쑤시개마저 고급화하여 수출하고 있는 것일까.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어떻게 신발과 의류시장에서 아직도 끊임없이
선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노동집약산업으로 경쟁력이 퇴화하거나 사양산업화해가는
분야에서도 새로운 디자인개발에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시장에서 오랫동안 건재하고 고도의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뒤늦긴 했지만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산업디자인이 신제품에
부가가치를 더해주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이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이 디자인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일본의 샤프사는 단순히 "찍는다"는 개념에서 "보면서 찍는다"는
개념으로 바꾼 새로운 디자인의 비디오 카메라를 개발하여 소니와
마쓰시타가 양분하던 시장의 30%를 일순간에 장악하고 2위로 급부상하였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D전기의 전기압력솥은 일반 전기압력솥보다 가격이 4배가 넘는다.

이렇게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급증하는 이유는 디자인과
기술이 타사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회사는 디자인개발과 기술개발에 많은 인력과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는 선진국과의 디자인경쟁시대에 돌입하였다.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화 감성화 개별화함에 따라 확실한 차별화전략이
시급하다.

이제 수출경쟁의 패턴도 중진국과의 가격경쟁에서 벗어나 선진국과의
디자인경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고질적인 무역수지적자는 결국 뉴디자인전략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