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정부가 발표한 "중앙은행 제도와 금융감독 체제 개편"안은 최선
이라기 보다는 차선의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원칙과 철학이 관철되었다기 보다는 타협과 협상의 결과라는 뜻이다.

그동안 세차례나 논란만 벌이고 끝냈던 중앙은행 독립 문제를 어떤 형태건
결론을 도출한 점은 "진일보"로 평가받을 대목이다.

중앙은행법 제정을 비롯 46개 금융관련 법률이 일시에 개폐된다는 점에서는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변혁을 예고해 놓고도 있다.

"잘라내고 통합" 하는 일인 만큼 이해당사자들의 극심한 반발도 어찌보면
예정된 과정이라 할수 있다.

정부의 이날 발표는 중앙은행 제도 개편과 통합 감독원 설립 두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은에 대해서는 "정부내 독립"을 보장하는 대신 은행감독원을 분리해
증권 보험과 함께 통합금융감독원을 설립한다는게 골자다.

한은의 상대적 독립은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감독원 분리는 이미
극단적인 반대론에 부딪혀 있어 장래가 불투명하다.

정부안이 이런 논란들을 잠재우고 국회의 입법과정을 통과해 낼지는 현재
로서는 "불가"쪽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 지적되어야 할점은 정부의 이날 최종안 발표에서도 드러났듯이
금융의 개혁이 금융규제 기관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격하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개혁의 당위이기도 했던 규제완화나 금융기관 진입퇴출, 경쟁력 강화,
소유구조 문제등은 토론의 도마에 제대로 올라보지도 못하고 실종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금융의 이용자는 소외되고 금융의 감독자들만의 "흥정"으로 끝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논쟁을 이런 방향으로 끌어간 것은 역시 정부의 잘못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을 비롯해 당사자 모두가 권한의 유지와 확장에만 골몰, 수요자들
의 요구를 외면했으며 결과적으로 개혁의 당위를 스스로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 설립될 통합 감독원도 치명적 결함을 안게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기구의 축소, 인원의 정리, 권한의 폐지 없는 통합 감독원의 설립은 통합
재경원 이상의 거대 조직화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런 공룡 감독원이라면 금융규제완화는 이미 물건너 갔다는 보는 시각도
많다.

또 하나 우려할 점은 개혁 시기의 불리함이다.

청와대가 축이되어 돌파의 강수를 쓰는 것이 과연 이시기에 적합하냐는
점이다.

그러지 않아도 정치권은 선거의 계절을 맞고 있는터여서 갈등만을 부추긴
끝에 이번에도 "실패"를 기록하고 말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에서 벌써 반론 성명을 발표해 놓고 있는 것 역시 심상치 않은
일이다.

금융개혁이 한여름 밤의 악몽이 되고말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