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엔 꼭 가야 하나"

4년제 대학을 나오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취업재수생들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거나 전문대학으로 진학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 진학보다는 자신이 일하고 싶었던
분야에서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소신껏 살아간다.

이와 함께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대학졸업장이라는 간판은 큰 의미가 없다.

여대생이 되기보다 애견미용사의 길을 택한 윤경아(19)양도 그런 케이스.

그녀는 고3때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학원에서 애견미용 기술을
배웠다.

생각보다 힘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대학 진학을 안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윤양은 말한다.

6개월동안 그녀가 개들을 다듬어주면서 벌어들인 돈만도 약 1천만원에
달한다.

조금더 열심히 해서 번듯한 애견미용소를 차리는 게 그녀의 목표다.

현재 내레이터 모델로 활약하고 있는 황은영(18)양은 서울의 모전문대
컴퓨터공학과에 특차로 합격했지만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대학졸업장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황양의 꿈은 패션모델이 되는 것.

내레이터모델도 이 꿈을 이루기 위한 중간과정이다.

자기의 적성이 이쪽이다 싶으면 과감하게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한다는게
황양의 생각이다.

이와는 달리 대학을 나오고도 일반직장 대신 제빵사로 나선 경우도 있다.

신기천(26)씨는 지방의 모대학을 졸업하고 일반기업체에 취직했지만 빡빡한
조직생활이 체질상 맞지 않아 사표를 던졌다.

대신 요리학원에서 제빵사 자격증을 따 지금은 모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휴일도 거의 없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고되긴
하지만 원래 이쪽이 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에 지금의 생활에 만족합니다.

전문 빵요리사가 돼 제 가게를 여는 게 장래 꿈입니다"

민음사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성균(31)씨는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에
못갔지만 지금은 훌륭한 고졸철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책읽기를 좋아했던 최씨는 논어.맹자는 물론 뜻도 모르는
파우스트까지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갔다.

8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에 취직하면서 최씨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유년시절의 폭넓은 독서에서 비롯된 그의 박식함과 명철함에 동료들은 혀를
내둘렀다.

지금은 대학교수들과도 역사와 철학을 논할 정도.

지난 95년 삼성그룹 신입사원 공채에서 쟁쟁한 대졸지원자들을 물리치고
고졸합격으로 화제를 모았던 최완섭(25)씨는 고등학교 시절의 취미를 살린
케이스.

최씨의 취미는 컴퓨터.

대학문턱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그의 컴퓨터 실력은 대경상고 시절부터
"미스퍼즐" "초롱이의 모험" 등 컴퓨터게임을 개발하고 "어셈블리 프로그래밍
3백제" 등 2권의 책을 낼 정도.

대기업에 입사하게 된 것도 순전히 든든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최근들어 바둑이나 프로야구 등 전문분야에서 대학에 가지 않고도 억대의
돈을 벌어들이는 이창호 장종훈 등이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부상하면서 대학
진학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른다.

< 김재창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