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보사태를 계기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대기업들의 부동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부동산 매물이 시장에 나오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이 본격적으로 부동산가격의 거품이 빠지는 궤도에
진입했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때마침 무역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있고,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의
투자여건도 좋지 않아 우리나라 경제전체가 복합불황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일고 있다.

과거 우리 나라의 부동산 가격을 설명하는 주된 요인이 거시경제 변수인
GNP 통화량 그리고 무역수지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때 이러한 주장과
걱정들은 설득력있게 들린다.

그러나 일본과 우리 나라는 부동산 시장구조가 외견상으로는 유사하면서도
내적으로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일본의 땅값 거품이 걷히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으로서
그 직접적인 계기는 일본 중앙은행이 프라임 금리를 0.5포인트 상승시킨데
있다.

일본의 부동산 투자는 공금융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이러한 금리조정은
즉각적으로 부동산 수요를 크게 감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때마침 이 시기는
일본이 제2차 지가(지가)폭등(1983~88년)을 겪고난 직후여서 그 영향은 매우
심대하였다.

일본의 제2차 지가폭등은 도쿄(동경)가 세계적인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도쿄 중심부의 오피스 수요가 폭증한데 기인하고 있고,
우리나라가 이 시기에 겪은 지가폭등은 80년대 중반 3개년간의 무역흑자,
그리고 올림픽 특수라는 해외부문의 영향이 지가폭등의 주요인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러나 일본은 부동산 투자가 금융시장의 조건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에 비해 우리의 경우는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간의 관계가 긴밀하지
못하다.

즉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부동산투자는 기존의 자산에서 동원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공금융을 통한 부동산투자는 각종 규제로 인하여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금리와 같은 전통적인 금융시장의 조작을 통해서 부동산 경기를
조절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가격이 폭락하게 되면 경제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30년대 미국이 겪었던 대공황 시기에 부동산가격의
폭락이 금융기관을 도산시키고 이는 전체 사회의 경제질서를 무너뜨리는
대재앙으로 발전한 점을 보더라도 알수 있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황 이후에는 2차
주택저당시장의 활성화 등 부동산 금융의 질서를 바로잡는 여러 가지
제도개혁을 실시한바 있고, 70년대 석유위기 이후에는 다양한 부동산
파생금융상품을 발전시켜 부동산 투자의 위험도를 크게 절감하고 궁극적으로
부동산에서의 투기적 이익을 없앨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의 수준이 높은가,혹은 우리나라 지가에 거품가격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는 많은 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으며 아직 일치된
견해가 제기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GNP 대비 전국 지가총액의 비율을 통하여 구제적인 비교를 해보면
우리의 경우 이 수치가 7배 이상으로 추정되어 선진국은 물론 이웃 일본의
5배 보다도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각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수평적인 비교에는 무리가 따르겠으나
OECD에 가입하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국가로서 이 수준은 아무래도 너무
높은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일시에 낮아지는 것은 우리경제를 파국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당장 이러한 사태가 일어난다고 보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정책결정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부동산을 보유한 계층
이고 또한 지방화 시대에 부동산가격의 폭락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될 것이며, 대부분의 주택소유자들이나 금융기관들도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국제 무역환경이 좋지 않고 앞으로도 나아질 전망이
별로 없다면 지가는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토지신화는 무너지고 이는
토지거품을 빼는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다.

요컨대 부동산 가격의 거품을 어떠한 방법으로 부작용이 없이 서서히
빼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의 정책에서 다루어야 할 주요 과제일 것이며,
그 해결방안은 전체 경제구조의 틀 속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동안 높은 지가에 맞추어 적응된 경제구조를 낮은 지가에 맞추어
작동하도록 하는 구조조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도시화의 성숙단계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수요자의
특성과 입지를 감안한 개발이 각광을 받을 것이고, 부동산시장 자체도
용도별 지역별로 차등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전체시장의
동향이 지니는 중요성은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따라서 수요에 부응하는 부동산의 공급이 이루어지도록 관련제도를
개편하고 특히 부동산 시장과 금융시장을 긴밀하게 연계시켜주는 부동산
증권화야말로 정부가 가장 핵심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라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