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에 사는 김성찬(73) 할아버지는 사고무친이다.

생활능력도 재산도 없다.

재산은 암수술을 받은 뒤 다 날려버렸다.

이젠 남의 집 울타리 밑에 판자를 덧댄 집에 살고 있다.

이런 그에게도 단 한가지 위안은 있다.

매주 두번씩 찾아와 딸보다 더 자상하게 보살펴주는 성명림(50)씨가 있기
때문이다.

성명림씨는 남편의 직장도 남부럽지 않고 아이들은 다 키워 출가시켰지만
권태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

홀로사는 김성찬 할아버지를 매주 두번씩 찾아뵙는다.

주머니를 털어 반찬거리나 과자라도 꼭 손에 들고 간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보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보는 듯
해서요. 손을 꼭 쥐고 보내지 않으시려는 할아버지를 두고 돌아올 때는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역시 안양에 사는 주부 조병월(51)씨는 매주 두번씩 안양6동 안양경찰서
앞 큰길가 토큰판매소에서 토큰을 판다.

지체장애인이자 위암환자인 신선희(40)씨의 가게를 대신 봐주는 것이다.

다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토큰판매소에서 그 바로 옆으로 부딪칠 듯
지나치는 버스의 소음과 매연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신씨는 뇌에 수포가 생겨 거의 매일 병원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되는
중환자다.

자주 기절도 한다.

치료를 받고 와서도 독한 약기운에 바로 일할 수 없는 딱한 처지다.

조씨가 신씨의 가게를 봐주는 사연이다.

성씨와 조씨가 속한 안양 여성자원봉사센터에는 이들 말고도 모두 6백70명
이나 되는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모두들 "서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는 참사랑의 의미를
몸으로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다들 일상에 쫓기는 평범한 가정주부이지만 누구보다 아름다운 나이팅게일
이다.

여성자원봉사센터가 처음 결성된 것은 지난 88년.

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안양지역 주부 30여명이
뜻을 모았다.

사회복지단체 노인복지회관 장애인종합복지회관 근로자회관(걸식노인 무료
급식) 원광어린이집 등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 어디에나 도시락을
싸들고 찾아갔다.

안양시도 이들의 사랑의 마음을 알고 지난 95년부터는 시청에 사무실을
마련해 줬다.

그렇지만 불황기인 요즘들어 그나마 몇푼씩 들어오던 후원금도 크게 줄어
살림은 더욱 쪼들린다고 한다.

최용주 회장은 "매월 30여명의 주부들이 이곳을 찾아오지만 끝까지 남아
봉사하는 인원은 10명정도"라고 털어놓는다.

청소 빨래 밥짓기 등 궂은 일을 직접 해본뒤 "나같은 고급 인력에게
어떻게 이런일을 시킬수 있느냐"며 한번 왔다가 그만두고 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

봉사활동 경력 10년이 넘었다는 독거노인 봉사자 문영희씨는 "일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그늘진 곳에 대해 일부러 눈을 감는 우리사회의 무관심
이 더 어려운 점"이라고 꼬집었다.

< 김주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