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안 들었다는 것은 매력 있는 말이다.

너무 대가 세고 장닭같은 아줌마들 매력없더라.

그는 한껏 애교를 부리면서 큰 눈에 우수를 띠고 말한다.

그녀의 탐미적 시각으로 봤을때 그는 지금까지 그녀가 만난 젊은이중엔
최고의 미모를 가진 남자로서 어필된다.

그녀가 1년이나 사귄 명구는 지성적인 놈이긴 해도, 항상 자기와 만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다가 아르바이트 자리가 좋은데 생기니까 칼로
자르듯이 딱 냉혈적인 이별을 선언했다.

그 녀석은 정말 너무 순수해서 아주 사귀기가 힘든 아이였다.

사뭇 자기가 김영신과 만나서 더러워져가고 있다고 자책하며 부끄러워
했고, 항상 그녀의 자존심에 멍이 들게 하던 순진한 총각이었다.

김영신으로서는 진정 힘이 드는 딜을 하게 하던 일류대학 섬유공학과
학생이었다.

그 녀석은 어찌도 자만에 차 있는 대학생이었던지 시골서 학비가
못 오게 되자 김영신에게 졸업후 갚는다고 차용증서를 쓰고 돈을 받아다
썼던 희귀한 타입이었다.

물론 그가 그 돈을 갚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차용증서들은 십여매나 그녀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차용증서의 내용은 생활비조로 30만원,등록비조로 3백만원 그런식이었다.

그 아이는 처음 같이 침대에 들게 되었을 때 그것은 사랑의 행위이고
금전적인 도움을 받는 것은 부채로 처리하라고 강요했다.

그녀는 근석과 처음 침대에 들때의 광경을 일생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명구는 늘 아인슈타인의 사진을 포켓에 넣고 다녔는데, 그 사진을
애인의 사진처럼 소중히 했고 연애도 한 경험없이 대학에 들어온 시골의
수재였다.

그러한 촌 아이니만치 영신도 결코 그 애와 재미를 본다든가 사랑을
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꿈은 안 꾸었었다.

섬유공학과의 우등생 한명에게 장학금을 주기위해 선발됐던 애가
명구였고 명구를 소개한 것은 섬유공학과 교수인 자기 친구였다.

그들이 친하게 된 것은 남편과 같이 명구를 스키장에 데리고 가는 기회가
있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홍콩에 나가게 되어 둘만 그녀의 콘도에서 3일간
스키를 배우게 되었다.

물론 김영신은 스키에 대가니까 명구에게 스키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두명의 성인 남녀가 같은 콘도에서 술을 마시고 디스코테크에 다녀오고
그러는 사이에 갑작스런 열풍에 휘말린 케이스였다.

정말이지 김사장은 순진한 젊은 남자를 두려워했다.

그것은 바로 철없는 20대남자 아이와 바람을 피우다가 첫번째 남편과
이혼까지 갔던 쓰라린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5년이나 연하인 두번째 남편이 사무실의 미스 리와 이상한
눈치를 보이기 때문에 명구와는 더 쉽게 힘겨운 사랑이 시작되었었다.

언제나 연하의 남자와의 관계는 무분별하게 열정을 쏟으면서 시작되지만
끝에 가서는 여자의 판정패로 끝나는 것이 그녀의 49살동안의 경험이었고
사랑의 역사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