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화 <미 시세로스틸 사장>

한보철강의 부도사태는 이제 국내에만 국한되 문제에서 벗어나
전 전세계의 이목을끄는 경제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미국업계에서는 한보부도사태를 두고 경멸과 시기의 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말들을 종합하여 분류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는 너무나 엄청난 금액이 투자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단일 업종에 쓰여진게 아니고 여러기업으로 분산돼 변칙적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을 비롯한 일본 대만등의 철강생산은 미국과 달리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밟는 경제구조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공정한 경쟁을 할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의 시각은 포철이나 뉴스에 나오는 한보철강의
시설을 보고 부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의 어두운 점도 많이 드러났지만 우리나라가
철강선진국이 되었음을 홍보하는 효과도 있다.

세계철강협회(IIST)회장의 출신국임을 다시 알려 주는 계기가 됐던것도
사실이다.

최대규모의 최신 박수래브 공정을 채용하고 있다든지 기술적으로 아직
실용화 되지도 않은 코렉스 공정에 무모하리 만큼 과감한 투자를 할수있는
풍토를 비방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부러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공정경쟁풍토가 조성돼있는 미국 철강업 앤드류 카네기와 켄 아이버슨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궁핍한 스코트랜드의 한 가정에서 태어난 앤드류 카네기는 13살때 부모를
따라 미국 핏츠버그로 이민을 와 카네기 스틸을 창업, 철강옹이 됐다.

그는 65세 되던 1900년에 이 회사를 매각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늘 입버릇 처럼 내뱉던 "부유하게 죽는것은 치욕이다"란 말을 입중하듯
자신의 돈을 사회에 전부 환원하고 미국에 이민온지 50년만에 빈손으로
고향 스코트랜드로 되돌아 갔다.

그가 떠난 이후 미국 철강업은 풍요와 자만과 나태로 뒤범벅이 되어
깊은 늪에 빠지게 됐다.

결국은 일본 철강업에 그 왕좌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하게 되고, 넓은 미국
땅은 일본산 후판과 강관이 판을 치게 됐다.

US스틸과 베트레헴등 고로업체들이 철강업을 포기하고 타업종으로 전환
또는 다변화를 시도할때 미국의 영광을 희생시켜주는 위대한 철강인이
나타났다.

카네기가 철강업을 시작한지 꼭 100년만의 일이다.

뉴코어(NUCOR)철강의 켄 아이버슨 회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실현하지 못한 고철을 전기로에 녹여 만드는 박스래브 공법을 적용,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가장높은 생산성과 가장낮은 생산원가로 월가에
선풍을 일으켰고 일약 포춘500대 기업으로 진입하였다.

한보철강이 작년에 완공해 가동중인 제1단지의 박스래브 공장의 바로
세계철강사상 뉴코어철강에 이어 두번째로 완성한 대규모 박스래브공정을
사용하고 있고 규모면에서는 뉴코어의 크로포즈빌 공장보다 오히려 더 크다.

월 18만t을 생산하는 철근생산공정역시 세계적으로 우수한 설비를
갖추고 있다.

필자의 견적으로 총 투자비를 1조5천억원으로 잡으면 순익 3%내지
5%만 보장되면 약 20년 전후로 초기투자비는 전액 상환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초기 투자비를 봐도 뉴코어사가 10년전에 1백만t 규모의 공장을
짓는데 3억달러를 쏟아부은것에 비하면 그렇게 무리한 액수도 아니라고 본다.

크로포즈빌공장을 지은 인디아나주의 옥수수밭 부동산값은 당진의
부동산과 비교할수 없이 낮은 점도 물론 감안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어느정도 보완책만 마련되면 한보철강 당진공장의 제1단계는
매우 성공적이고 우리나라 산업전반에 포철에 이어 중대한 기간산업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제2단지에 있다.

투자금액의 규모도 그렇지만 기술상의 불투명에 문제가 있다.

제1단지의 전기로 공정에는 두가지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고철을 사용하기 때문에 고철의 수급과정과 가격에 따라
생산가격이 수시로 변경된다.

따라서 고철 대용재료나 첨가제를 사용해 고철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

둘째는 순고철로는 고객의 까다로운 시방서를 맞추어낼 양질의 철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세계의 크고 작은 철강회사들은 고철첨가제
연구에 혈안이 돼있고 탁월한 첨가제 발명과 그에 따르는 공법개발은
철강산업의 성패를 좌우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고철첨가제로 직접환원철(DRI) 단광처리철(HBI)
아이언 카바이드(IRON CARBIDE)등을 들수있고 회사에 따라 장단점을 고려해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고 있으나 최선의 기술은 나와있지 않다.

한보철강의 경우 DRI를, 미국 뉴코어철강은 아이언 카바이드를 선택했다.

한보는 또한 기술성이 채 검증되지 않은 코렉스 제철법을 사용하고
있으나 미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제2단지의 평가는 그리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일이 아닌것
같다.

한보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가지 위험성과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

특히 한보철강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순수민간자원으로 국가기간산업을
일으키려 했다.

이웃 일본은 세계최대의 조강량을 유지하고 있고 중국 역시 세계 3~4위의
생산국으로 약진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고품질의 철강을 이웃보다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새로 짓고 생산성이 없는 공장을 빨리 처리하는데
있다.

민족의 앞날과 조국경제를 걱정하는 기업인이 많이 나와 복잡한 우리의
정치.경제적 풍토를 이겨나가야 한다.

정작 우리가 던지는 돌은 비전과 야심의 기업인이 아니라 우리의 그릇된
풍토에 맞추어져야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