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양대 항공기 제작회사인 보잉과 맥도널더글러스가 합병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사실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사고 팔고, 합치고 갈라지고 쪼개지는
일이 하루에도 수백건씩 일어나고 있다.

외국에서는 합병과 인수를 가리키는 M&A가 일찍부터 기업경영의 중요한
이슈가 되어 왔다.

기술과 정보의 경쟁으로 압축되는 무한경쟁에서 홀로서기가 어려워지자
기업들은 라이벌기업을 인수하든가 합병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지난 십수년 사이에 각국에서 내로라 하는 기업치고 M&A를 경험
하지 않은 기업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디즈니의 ABC방송 인수, 체이스맨해튼과 케미컬은행의 합병, IBM의 로터스
인수, 타임과 워너의 합병, 도쿄은행과 미쓰비시은행의 합병, 브리티시텔레컴
의 MCI 인수 등 굵직굵직한 기업들의 인수합병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XX기업은 아무개의 기업"이라는 통념이 지배해 온 우리나라에서
M&A는 그동안 생소한 개념으로 남아 있었지만 어느새 현실적인 이슈로
다가왔다.

사실 M&A 풍토가 전혀 무르익지 않았던 때도 우리는 일찍이 서울은행과
신탁은행의 합병 등을 경험했었다.

근래들어서는 동부그룹의 한농 인수, 신원의 제일물산 인수 등이 있었고
LG의 지너스 인수, 삼성의 AST 인수, 현대의 맥스터 인수, 한화의 그리스은행
인수 등 지난 몇햇동안 50여건에 달하는 해외 기업인수도 있었다.

최근에는 한화 울산 항도 등 종금회사의 경영권 공방전이 주목을 끌고
있는데, 앞으로는 시장개방과 규제완화가 진전됨에 따라 우리 업계에 더욱
거센 M&A바람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요즈음 여러 기업들 사이에 M&A설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는데, 예컨대
외환은행과 국민은행의 합병 따위가 생각보다 빨리 실현될 수도 있다.

M&A의 산술에서는 1+1이 2가 아니라 2보다 크다는 이른바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최근에는 많은 기업들이 M&A를 거친 이후 다시 리엔지니어링이나 품질관리
(TQM), 전사적 자원관리(ERP), 총요소 생산성관리(TFP), 리스트럭처링,
다운사이징, 스핀오프(spin-off) 등 새로운 경영개선기법이나 기업구조의
재조정을 시도함으로써 시너지효과를 추구하고 있다.

경영진의 비효율적 경영으로 가지고 있는 잠재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는 기업사냥꾼들의 M&A 타깃이 되기 쉽다.

기업주나 경영자들이 기업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면 M&A대상이 돼 회사를
잃게 되는 상황이 바로 오늘날의 기업환경이 되고 있다.

따라서 M&A는 기업의 경영성적을 평가하고 나아가 기업을 통할하는 시장의
기능을 하게 된다.

M&A가 성행함에 따라 대상 기업들을 찾아 관련기업에 다리를 놓아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M&A 컨설팅회사나 중개회사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M&A 대상기업의 주식을 조금씩 사들인 다음 대주주
를 향해 회사를 M&A 하겠다고 협박해서 회사로부터 웃돈을 받고 주식을 팔아
넘기는 공갈협박장(green mail)도 등장한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부실경영을 참다 못한 소주주들이 들고 일어나 스스로
M&A를 추진하는가 하면, 남에게 삼킴을 당하느니 차리리 엄청난 부채를
스스로 떠맡음으로써 회사를 파탄으로 몰아가겠다고 극약처방(poison pill)의
엄살을 부리는 회사도 생긴다.

적대적 M&A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기업에 멋진 "백말탄 기사"가 나타나
기업사냥꾼을 물리쳐 주는 동화같은 M&A도 있다.

M&A시장에서는 종종 낭설과 억측이 난무한다.

그래서 관련주식의 내부자거래, 자사거래, 매집과 투매, 주가조작 등
불미스런 일들이 발생하고 거래질서가 교란된다.

시너지효과를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M&A후에 회사 일부를 매각하거나 기구를
감축하기도 한다.

그 바람에 감원, 해고, 공장이전 등으로 종업원이나 지역사회 등 기업 이해
관계자들의 안녕과 복지에 큰 타격을 준다.

지금 폭풍전야처럼 숨을 죽이고 있는 우리 금융가에 닥칠 M&A로부터 우려
되는 폐해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M&A가 가져다 줄수 있는 또다른 병폐는 전통적 경영의식을 저하시키고
비산업적 경영을 조장해 탈산업화를 부채질하는 것이다.

불건전한 M&A가 팽배할때 기업들은 부지런히 기술을 개발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팔 생각은 않고 어떻게 하면 쓸만한 기업을 헐값에 사들일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회사를 잘 다듬고 치장해서 좋은 값에 팔아 넘길수 있을까 하는
비산업적 기업관리에 몰두하게 된다.

M&A를 통해서 1+1이 2보다 큰 결과를 얻는다면 좋지만 고작 2나 2보다도
작은 결과를 얻는다면 문제다.

불행하게도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손을 댄 M&A의 결과가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패한 합병의 본보기가 된 서울+신탁은행의 경우는 물론이고, 재벌기업들이
쇼핑했던 해외기업들이 아직도 적자운영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섣부른
M&A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동안 배타적 기업문화, 그리고 법적-사회적 요인 때문에 M&A가 활성화될수
없었지만 이제 개방경제로 들어서고 있는 현실에서 M&A는 불가피한 이슈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책당국 기업 투자자 등 모두가 M&A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기대되는 경제적-사회적 득실을 정확히 판단할줄 알아야겠다.

그래야만 기업경영과 국가경제에 1+1>2의 상승효과를 가져 오는 M&A를
추구할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