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환이 대옥에게로 다가가서 손목의 맥을 짚어 보았다.

이환은 과부로 살아오면서 틈틈이 의학서들을 읽고 실제로 진단도
해보고 약도 처방을 해온 터라 지금 대옥의 맥만 짚어보아도 그 병세가
어느 정도 되는지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의원을 불러 올까요?"

자견이 이환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이번 병은 아무래도 이기기가 힘들 것 같구나.

지난번에 의원도 약으로 어떻게 해보기는 어렵고 본인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그랬다면서. 이제 정말 준비를 해야겠다"

"준비라니요?"

자견과 설안이 눈물 젖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이환을 쳐다보았다.

"수의 준비는 어떻게 되었느냐? 숨을 거두기 전에 수의를 입혀주어야
저승길을 훨씬 편하게 갈 수 있느니라"

수의라는 말을 듣자 자견과 설안, 유모 왕씨와 견습시녀들이 다시
소리를 내어 흐느꼈다.

이환도 눈물이 솟구치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다.

"수의는 대부인 마님의 분부로 이미 만들어 놓았습니다마는 좀더
지켜보다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입혀드리는 게 어떨지"

자견이 아직 숨을 헐떡이고 있는 대옥에게 수의를 감히 입힐 수가 없어
망설였다.

대옥이 의식이 다시 돌아와 자기가 수의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한가닥 남은 생의 의지마저 순식간에 꺼져버릴 것이 아닌가.

"글쎄 지금이 숨을 거두기 직전 같다니까"

"그래도 조금만 더"

이환은 결국 자견의 간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잠시 다녀오겠다면서
도향촌으로 건너갔다.

이환은 도향촌으로 가서 시녀들에게 집안 단속을 잘 하라고 단단히
지시를 하고 대옥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소상관에 와 아예 머물
작정이었다.

그 시각, 보옥은 새로 꾸민 신방에 앉아 밤에 치르게 될 혼례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인과 왕부인, 희봉 들을 비롯한 집안 부인들과 어른들이 신방이
있는 별채로 몰려와 혼례식 준비를 하느라고 부산하였다.

보옥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혼례식 준비하는 일에 끼여들고도
싶었지만 대부인과 왕부인이 보옥에게 신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몇번이고
당부해놓은 것이었다.

보옥은 문틈으로 갖가지 음식 냄새가 풍기는 바깥을 내다보며 날이 빨리
어두워져서 대옥과 혼례식을 치르게 되기만을 분초를 손꼽아 기다렸다.

신부복을 입은 대옥의 모습은 어떠할까.

아직까지도 생각이 오락가락하는 보옥이긴 하였지만 대옥을 신부로
맞아들일 일만 떠올리면 저절로 입이 헤 벌어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