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선박엔진 공장이랑 오토바이 공장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나로선 이해가 안가는군요".

창원에 있는 오토바이 제조업체 D사의 관리담당 임원은 올해 사측
대표로 노사협상 테이블에 앉았다가 끝내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D사 노조가 요구한 내용은 "동일지역 동일임금".

같은 공단내 처우가 최상급인 다른 회사에 비해 임금이 낮으니 이를
시정해달라는 주장이었다.

노조측이 제시한 근거는 "삶의 터전이 같으면 생활비도 비슷하다"는 것.

"물론 협상용이었겠지요.

그렇지만 생산성도 다르고 업종 특성도 다른데...

그런 발상 자체가 참 기괴한 거지요" (C이사)

D사 노조의 요구는 누가 생각해도 엉뚱하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이 갑자기 생겨난건 아니다.

지난해까지 D사 노조의 최대 현안은 이른바 "동일업종 동일임금"

"오토바이제조도 엄연히 운수장비 제조업인 만큼 자동차업계의 임금을
적용해달라" (노조관계자)는 주장이었다.

올해는 요구의 차원을 약간 달리한 데 지나지 않는다.

"업종이 같으면 임금인상율은 물론 임금까지도 같아야 한다"는 이른바
"동일업종 동일노동"의 환상은 이제 "같은 지역이면 똑같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동일지역 동일임금"을 내세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동일업종 동일임금"이란 주장에 내재하고 있는 사고방식이다.

이는 "기업의 생산성이나 개인의 동기유발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임금의 악평등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관행일 뿐" (S그룹 인사팀부장)이다.

결국 동일조직내에서 무임승차를 조장하는게 연공서열식 임금시스템
이라면, "서로 다른 조직"간에 무임승차를 조장하는게 바로 "동일업종
동일임금"의 관행이다.

노동의 댓가인 임금은 노동의 종류와 숙련도에 따라 차별화 되는게
원칙이다.

기업간에도 이같은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은 임금인상폭이나 임금
수준에서 차이가 나는게 상식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선 이같은 상식이 오히려 비상식이 된지 오래다.

우선 노조의 요구가 그렇다.

또 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수용한다.

당연히 능력에 넘치는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기업이 생겨났다.

결국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더구나 이같은 시스템은 동기유발형 보상체계의 설자리를 없앤다.

생산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가장 생산성이 처지는 기업이 업계 최고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인천에 있는 목재업체 C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지난 상반기 20억원 가까운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경상이익도 전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또 매출액 성장률도 6%대로 업계 평균인 10%대에 훨씬 못미쳤다.

그러나 이 회사의 종업원 임금은 업계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대졸신입사원의 초임(연봉 기준)은 1천3백50만원으로 선두그룹인
L사(1천2백만원)에 비해 높다.

차장급의 경우도 연 2천6백만원으로 역시 L사(2천4백만원)에 비해
월 평균 20만원가량 더 많이 받는다.

물론 생산성이 낮고 영업실적이 떨어진 책임을 근로자 측에만 돌릴
수는 없다.

회사내 다른 문제, 예를 들면 경영자의 자질 부족이나 낡은 설비,
비효율적인 조직이 생산성 향상의 더 큰 걸림돌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생산성이 떨어지건, 실적이 어떻건 대우는
언제나 똑같아야 한다는 그룻된 "평등주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데 있다.

평등주의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동기를 유발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익이 나도 적자가 나도 임금인상율은 똑같은데 무슨 신이 나서
열심히 일을 하겠는가" (김영기 LG전자 인사팀장)라는 반문이다.

게다가 이는 그룹이라는 울타리로 묶여 있는 한국기업에서 "동일그룹
동일임금"의 논리로 발전하기 일쑤다.

사실 한국에선 같은 그룹이면 각 계열사가 생산성과 상관없이 동일한
임금을 받아왔다.

생산성을 기준으로 노골적인 차별대우를 한다면 푸대접 받는 회사의
사기가 꺽일 것이란 우려에서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을 도외시한 임금인상 조정 관행이 전체적으로
플러스냐 마이너스냐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기업들은 플러스 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같은 관행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양병무 경총 노동경제 연구원 부원장)

결국 대안은 "동일생산성 동일임금"뿐이다.

< 정리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