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나 친목회부터 시작하여 각종 동호회며 학회에서 클럽까지
이런저런 모임이 많지만, 특히 "한울회"를 소개하고자 하는데는 한가지
이유가 있다.

1974년에 고대법학과 71학번중 마음 맞는 친구들 11명이 모여 시작한
이 모임은 회원의 처자식을 포함한 온 가족이 모두 회원인 것이
특징이다.

요즘같은 세상에서 친구집 숫가락 갯수까지 서로 훤히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터고 지내는 그야말로 끈끈한 사이를 유지하며 살아가자는 다소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이 모임의 시초였다.

따라서 회원수가, 모두가 총각이었던 창립 당시에는 11명이었지만
이들이 장가가면서 배로되는가 싶더니 아이를 낳기 시작하면서 오늘
가만이 따져보니 드디어 버스 한대분량 (44명)으로 늘었다.

적정회원수가 농구팀 두팀은 되어야 한다는데 의기투합하여 후보겸
심판 한명까지를 배려해서 처음에 11명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울회"의 "한"에는 "크다"는 의미와 함께 "동일" 또는 "단일"이라는
의미도 있어서 이모임의 구성원들은 "큰 울타리"속의 사람들이기도 하고
"같은 하나의 울타리"속의 사람들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모임에는 또 그 흔한 회장 총무가 따로 없다.

그냥 수시로 돌아가면서 맡는 "간사커플"이 있어서 이들 부부가 안팎
사람들과 아이들을 적절히 잘도 이끌어 나오고 있다.

이 "한 울타리"속에 있는 남자들만 그 이름을 불러보면 김용진
(북부지청 부장검사) 설승섭 (중국 청도소재 한길피혁사장) 손동권
(건대법대교수) 손진상 (안동대법대교수) 오양환 (세진창투이사) 이성대
(쌍용정유차장) 이영만 (극동그룹회장비서실장) 정진호 (법무부부장검사)
조장연 (현대자동차 길동영업소장) 허홍만 (대성건재사장)이다.

그동안 20여년이상 이런 모임을 가지며 웃고 즐기다보니 한울 아버지
회원들의 나이는 어언 4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언젠가부터 어머니
회원들의 주된 화제는 입시 수험생관리로 바뀌어 버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가 한창 대학시절의 팔팔하던 모습들을 잘기억하고
있는 사이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모였다 하면 마음은 모두 이팔청춘이다.

금년 여름에도 희끗희끗 해진 머리와 중년 남녀의 육중한 몸매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감하게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모교 캠퍼스를 찾아
아이들과 어울려 피구도하고, 땀 때문에 착달라붙은 속옷이 찢어진 것도
모르고 자식들과 몸싸움을 하며 전후반 각 10골 내기 농구시합을 하기도
하였다.

비록 농구가 끝나고 나서는 모두 "이제 체력 때문에 농구는 안되겠으니
내년부터는 그만 하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만 이들이 내년에도 또
농구를 할 것임을 필자는 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