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쓰러지자 자견이 당황해 하며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못하였다.

대옥이 목욕을 마치고 나와 추궁을 하면 어쩌나 겁이 나기도 하여
아예 방을 나가버리려고 하는데, 마침 청문이 보옥을 찾으러 소상관으로
왔다.

"보옥 도련님이 여기에 계세요? 밤이 이슥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염려가 돼서 찾아와 봤어요"

자견은 잘 되었구나 하고 보옥을 청문에게 맡겼다.

"여기로 왔다가 몸이 좀 피곤한지 드러누우셨어.

청문이 네가 잘 모시고 가"

청문이 보옥을 흔들어 깨워 부축을 해서 간신히 이홍원까지 데리고 갔다.

습인은 청문의 부축을 받고 들어서는 보옥을 보고는 감기 기운으로
저러나 하고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좀 있으니 두 눈이 붉어지고 입가에는 침이 질질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실성을 한 사람처럼 일어나 앉히면 멍하니 일어나 앉고 베개를
베어 뉘면 또 픽 쓰러져 눕고 차를 따라주면 그저 따라주는 대로 마시고
하였다.

자기 몸의 상태가 어떤지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전혀 분별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습인이 대부인을 비롯한 어른들께는 감히 보옥의 상태를 알리지
못하고 보옥의 유모 이씨에게만 급히 알렸다.

이씨가 달려와 보옥의 맥을 짚어보고 인중을 손톱자국이 나도록
꼬집어보고 하더니, "이거 보통 병이 아닌데. 손톱으로 꼬집어도 아무
반응이 없어" 하며 울먹였다.

그런 소동이 일어나자 어느새 대부인과 왕부인이 보옥의 방으로
달려왔다.

습인은 보옥이 아무래도 소상관으로 갔다가 뭔가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 없다고 생각하고 곧장 소상관으로 달려 가서 자견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나 자견은 보옥이 대옥이 목욕을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그냥 쓰러졌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대옥이 옆에 있고 하여 습인이 더 따져 묻지 못하고 이홍원으로
돌아오려는데 대옥도 보옥의 상태가 염려되어 자견을 데리고 따라나섰다.

대옥과 자견이 보옥의 방으로 들어서자 보옥이 자견의 옷소매를
붙들더니 소리를 질렀다.

"가려거든 나도 데리고 가다오!"

보옥이 대옥을 잡지 않고 자견을 붙잡는 것을 본 대부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견을 족치기 시작했다.

"바른 대로 말해. 보옥이에게 네가 무슨 소리를 한 게지? 그렇지?
내 눈은 못 속여"

대부인이 윽박지르자 자견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실토를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