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계의 해외진출이 붐을 이루고 있다.

컬러TV 냉장고 등 가전제품공장은 물론 반도체 공장도 해외로 나가고 있다.

완성품 메이커 뿐만이 아니다.

부품업체들도 잇따라 해외에 공장을 짓고 있다.

진출지역도 과거 동남아 중국 등에서 유럽 영국 미국 등 이른바 선진국
시장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전자업계 해외공장은 가전제품과 전자부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시장 있는 곳에 공장 있다"는 원칙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공장을 짓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국내 현실은 전자업체들의
국내 탈출 러시를 부추기고 있다.

비싼 땅값이나 높은 인건비,각종 규제와 공장을 설립하기까지 숱하게
쌓여있는 장벽 등은 기업들을 해외로 내모는 또 다른 동인이다.

전자업계의 해외투자 현황을 보면 96년 3월 현재 167개 해외생산법인이
세워져 있다.(전자산업진흥회 조사)

지난 90년까지 44개 해외법인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5년만에 123개
해외법인이 증가한 것이다.

이중 아시아 지역에 대한 투자는 117건으로 전체의 70%를 웃돌고 있다.

분야별로는 전자부품공장이 77개로 가장 많고 가전제품 생산법인은 71개,
정보통신 관련 현지 법인은 16개, 산업용 전자기기 공장은 3개로 조사됐다.

판매법인은 100여개가 있다.

유럽이 34개소로 가장 많고 아시아 25개, 북미 21개, 중남미 11개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성장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동지역과 중남미 지역은
판매법인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전자업계의 해외 연구소는 미국이 15개소로 가장 많고 일본과 EU가 각각
6개, 러시아 3개 등 총 30여개소에 이르고 있다.

이중 미국과 일본에 위치한 연구소는 멀티미디어 등 차세대 핵심기술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EU지역 연구소는 대부분 현지시장
공략을 위한 기구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러시아에는 정보통신 관련 기술과 기초기술 요소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소가
설립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도 이스라엘 등지에도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소를 세울 계획이다.

전자업체 세계화의 두 축은 "복합화"와 "현지화"다.

삼성의 영국 윈야드 단지와 멕시코 티후아나 단지는 모두 설계 당시부터
복합화 개념을 갖고 지어진 생산단지다.

LG전자의 인도 복합전자단지나 대우전자의 폴란드가전단지등도 마찬가지다.

복합화를 통해 물류 부품조달 등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전자회사들의 판단이다.

또 다른 한 축은 현지화다.

현지형 상품으로 해당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뜻이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선 주로 현지 시장 공략에 이같은 현지화전략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인도나 멕시코 등 후진국시장에선 현지 시장 공략과 함께 현지인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도 관건이다.

현지 연구개발(R&D)센터를 세우는 것 역시 현지화 전략의 일환이다.

현지 판매 현지 애프터 서비스에서 현지 연구개발(R&D)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업체중에선 특히 가전3사의 움직임이 가장 빠르고 활발하다.

LG 등 가전 3사는 전세계 주요국가에 생산.연구 포스트를 구축해 현지
마케팅과 기술교류를 추진중이다.

전자부품업체들은 주로 가전3사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춰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최근 세트메이커와 부품업체간의 동반진출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결국 전자업계의 세계화전략은 저임금이나 반덤핑 회피를 위한 소극적
전략에서 탈피, 현지 경영을 통한 적극적인 현지 시장 공략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또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정보통신업계의 해외진출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시장을 선점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앞으로 더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전자업계가 이같이 해외로 진출하는 것에는 적지 않은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국내 핵심산업인 전자산업의 "공동화"라는 문제가 그것이다.

동반진출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가전업계는 이미 범용제품을 중심으로
공동화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자부품업체들 스스로도 국내 채산성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진출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가전부문의 공동화는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국내 전자산업에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요인이 된다.

주요 전자업체들이 이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국내 전자산업의 지도는 새롭게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전자업계가 세계경영의 페달을 제대로 밟아 세계화의 열매를 따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