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문화권에선 남성 정장에 넥타이는 필요 불가결한 장식물로 되어 있다.

가령 공식 상에서 상의를 벗는 일은 있을수 있어도 넥타이만은 매는게
에치켓으로 되어 있다.

이 넥타이문화가 양복과 함께 동양문화권으로 유입되면서 어느듯 넥타이에
양복이 남성의 정장으로 되어버렸다.

동양의 일류호텔 식당에 남성이 "노타이" 차림으로 들어서면 제지를 받게
되는 경우를 볼수 있다.

넥타이란 네크(neck)와 타이(tie) 의 복합어로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로마시대의 군인이 사용한 포칼(focal :울 목도리)에서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다.

직접적인 기원은 크라바트(crarate :옛 남자용 목도리)로 그 어원 크로아트
(croate)는 크로아티아의 기마장병이 목에 감았던 선명한 빛깔의 천을 본뜬
것이다.

이것이 17세기 중엽부터 프랑스 상류사회에 등장해서 1660년대부터 유럽
남성복으로 일반화하게 되었다.

19세기 남성복 유행의 주도권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바뀌자 크라바트란
용어 대신에 네크클로스란 말이 일반화되었고 1830년께부터 넥타이라는
말이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초기의 넥타이는 현재의 것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으나 시대와 더불어 점차
띠 모양으로 변형되고 새 소재의 사용등으로 1890년 더비 타이(Derly tie)와
포인핸드(four-in-hand)라는 현대적 넥타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영삼대통령과 하시모토 일본총리의 노타이
차림은 양국간의 격의없는 대화를 위한 노력의 상징이라고 생각된다.

동양식으로 표현하면 구금을 털어 놓고 대화를 나누었다는 뜻이 된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일 두나라 정상이 미래 지향적인 동반자 관계로
나가기 위해 이같이 격식을 초월해서 허심탄회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더구나 넥타이란 동양 고유의 문화도 아니고 또 "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이하면서 노타이차림을 선호하는 경향마저 있다.

또 노타이정상회담은 이번 제주도회담이 처음도 아니다.

우리 국민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같은 형식보다 한.일 정상끼리의
다짐이 앞으로 양국간 현안문제해결에 얼마나 적절히 반영되느냐에 있다고
할수 있다.

지금까지 한.일 두나라간이 미래지향적인 분위기가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으로 깨진 적이 없지 않았다.

앞으로는 다시 그런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