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옥이 손수건을 종이 삼아 붓으로 적어내려간 시는 말할 것도 없이
보옥이 대옥에게 헌손수건을 보낸 뜻을 담고 있었다.

눈물은 자꾸만 고여 흘러넘치누나 남몰래 흐르는 이 눈물 누구를
향한 것인가 그대의 눈물 묻은 손수건 받고 보니 나 또한 사랑의 슬픔에
젖지 않을 수 있으리 대옥은 그 손수건이 보옥이 대옥 자기를 생각하면서
흘린 눈물을 닦던 것일 거라고 짐작하면서 시를 적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손수건 군데군데에 눈물의 흔적인 듯 얼룩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손수건으로 보옥이 주로 땀을 닦았을 뿐이었다.

보옥은 자신의 체취가 진하게 묻은 손수건을 대옥에게 보냄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대옥은 한단계 더 나아간
셈이었다.

아무튼 보옥이 얼떨결에 손수건을 보내긴 하였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다.

대옥은 시 세편을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는데 네번째 시를 쓰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가슴에 불덩이가 들어온 듯 뜨거워지면서 두 볼이
달아 올랐다.

왜 이럴까.

시를 쓰다가 흥분이 되어 그런가.

대옥은 경대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발그스럼한 게 스스로도 반할 만큼 아름다웠다.

대옥은 두 손으로 자기 얼굴과 몸을 어루만지며 행복감에 젖어 침대로
올라와 다시 누웠다.

방안 가득히 먹물 냄새가 그윽하게 퍼져 있었다.

대옥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가슴의 열기는 실은 대옥의 병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조짐인 것이었다.

한편 습인이 보채가 기거하는 형무원으로 가서 보옥을 위해 책을
빌려 오려고 하였으나 보채는 이미 대관원을 나가 어머니 설부인의
거처에 가 있었다.

보채가 보옥의 일로 어머니와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데 오빠 설반이
술에 취해 돌아와 혀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끼여들었다.

"보옥이 아버지에게 매를 맞아 뻗었다며? 히히, 매를 맞을 만도 하지"

그렇게 빈정거리는 설반을 보자 보채가 속이 뒤집혀 언성을 높였다.

"오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안 그래도 오빠가 고자질을 하여
보옥 오빠가 맞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정말 고자질을 한 거예요? 도대체 뭐라고 고자질을 했어요?"

그 소문은 가환이 자기에게로 쏠리는 의혹의 눈길을 설반에게로 돌리기
위해 일부러 지어내 퍼뜨린 것이었다.

"내가 고자질을 했다구? 누가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그놈을
찾아내서 죽여놔야지"

설반이 달려나가더니 대문 빗장을 뽑아들고 설쳐댔다.

설부인과 보채가 황급히 설반을 말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