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M&A세계에서는 정반대의 개념이 통한다.

최선의 수비만이 최선의 방어다.

적대적 M&A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즘 유일한 대비책은 최선을 다해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철통같은 방어태세뿐이다.

M&A방어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주주들의 힘을 모아 공동전선을 구축하거나 자사주 취득등을 통해 지분율을
높이는 방법이 전형적인 것이다.

내부약점인 대주주간의 불화를 없애는 것도 빼놓을수 없다.

유상증자를 통해 실권주를 떠안거나 자기를 도울 협력자를 찾는 방법,
여론에 호소해 동정표를 모으는 방법등 다양하다.

많은 방어전략중 가장 손쉬운 방법은 주주들에 대한 설득과 호소이다.

공격자의 매수제안중 불합리한 점과 무리한 점을 찾아내 주주들에게 M&A의
부당성을 알리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특히 주총에서 위임장대결(Proxy Fight)이 벌어졌을 때 사전
설득전을 통해 관심이 없는 주주들의 의결권을 대량 확보할 수 있다.

지난 93년10월 기아자동차의 사례가 성공적인 방어에 속한다.

삼성그룹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증권을 통해 기아자동차지분 8%를
매집했을 때 기아자동차는 우리사주와 경영발전위원회에 지원을 호소한 끝에
경영권을 지켜낼수 있었다.

여론의 동정을 유도해 냄으로써 성공할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기아는 특히 300여 협력사에 기아주식을 매집해줄 것을 요청, 자기편을
늘리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대주주간 경영권분쟁을 사전에 없애 적들의 침투요인을 없애는 방법도
중요하다.

올해초 제일물산의 1대주주와 2대주주간의 경영권분쟁을 틈타 신원그룹이
2대주주와 손잡고 경영권을 장악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2대주주측의 지원요청을 받은 신원그룹은 계열사와 관계사를 통해
제일물산의 주식을 꾸준히 사들여 제일물산을 손에 넣을수 있었다.

결국 제일물산은 내부균열로 인해 M&A당한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유상증자와 함께 우선주 신주인수권부사채등을 발행해 놓는 것도 좋은
방어방법이다.

이 방법은 미리 약을 뿌려 놓는다는 뜻에서 미국에서는 독약먹이기(Poison
Pill)로 불리기도 한다.

대상기업이 사전에 우선주 신주인수권부사채등을 미리 발행해 놓고 만일
외부에서 매수공격하는 적이 나타나서 주식을 사모았을 경우, 이미 발행한
우선주나 인수권을 현금이나 보통주등과 교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격측은 주주들의 청구에 따라 엄청난 규모의 현금을 지급
하거나 주식을 추가로 발행, 주주들에게 교환해 줘야 하기 때문에 기업매수
를 포기하게 할 수 있다.

95년이후 주요 상장기업들이 전환사채발행이나 DR(주식예탁증서)발행에
적극적인 것도 방어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기아자동차가 94년 5월과 8월에 해외DR를 발행하면서 의결권을 주주가
아닌 발행사가 행사할 수 있도록 독특한 옵션(발행조건)을 단 것도 이런
사례다.

지난 94년10월 국내 처음으로 표면금리가 0인 제로쿠폰을 발행한 일진전기
가 전환사채를 떠안아 지분을 유지했다.

상장이후 1대주주의 지분을 50% 이하로 낮추지 못하면 상장폐지요건에
들었던 일진전기의 허진규 일진그룹회장은 서둘러 17만주를 시장에서 처분
했다.

그리고 공모조건이 좋지 않은 10억원규모의 제로 CB를 발행해 그중 40억원
어치를 떠안았다.

당시 증권계에서는 발행조건이 나쁜 CB를 발행하는 것은 다분히 지분
방어용이라고 해석했다.

왕관의 보석(Crown Jewel)이라는 전략도 배워둘만 하다.

매수공격자가 가장 탐내는 매수대상기업의 자산이나 사업부문을 왕관의
보석이라고 부르는데 공격자가 손을 뻗치기가 무섭게 매각처분, 매수의도를
좌절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매각처분은 기업내에 현금흐름을 양호하게 해 매수공격자와 싸울
수 있는 "실탄"이 되기도 한다.

팩맨(Pac Man)도 방어전략의 하나다.

전자비디오 게임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문용어로는 역매수제의라고
불린다.

매수공격측이 대상기업의 주식을 공개매수하겠다고 발표하면 대상기업도
이에 대항해 공격측기업을 역매수하겠다고 맞불을 질러 공격측이 당초 발표
를 취소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또 회사가 갖고 있는 영업권등을 우호적인 회사에 양도, 매수실익이 없도록
하는 방법도 같은 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

여기에다 적대적인 매수시도가 있을 경우 우호적인 기업과의 합병을 추진,
주식수를 늘림으로써 막대한 추가자금이 소요되게끔 해 매수를 어렵게 하는
전략도 있다.

백기사(White Knight)를 동원하면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

강제적 기업매수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을 때 이용된다.

기업을 넘겨주게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수단으로 대상기업을
보다 우호적인 제3의 투자자(White Knight)에게 넘겨줌으로써 원래
공격자측에게 실패를 맛보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9월 경남에너지지분 경쟁시 대웅제약이 한때
백기사로 등장한 적이 있다.

공격측의 부도덕성을 부각해 M&A의도를 좌절시키는 것도 국내에서는
효과적이다.

삼성그룹이 기아자동차주식을 매집할 당시 기아측이 "자동차업종에 진출
하기 위해 비신사적으로 몰래 주식을 매입했다"고 떠들어 주식을 팔게 한
적이 있다.

당시 여론은 삼성그룹에 비난을 퍼부었으며 정부와 국회도 여론을 받아들여
삼성으로 하여금 지분을 매각토록 압력을 행사, 결국 삼성이 매각의사를
발표했다.

미국등지에서 유행하고 있는 김낙하산(Golden Parachute)방식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는 강제적 기업매수로 경영진이 사임 또는 해고당할 때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퇴직금이외에 현금 주식매수선택권(Stock Option)등 상당액의
추가적 보상을 해줄 것을 규정해 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격측이 실제로 경영권을 장악해도 퇴직임원들에 대한 엄청난
퇴직금지급부담을 안도록 함으로써 매수전략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기업이 매수공격의 대상이 됐을 때 경영진이 전원 사퇴할 것을
협약해 두는 방법(People Pill)도 있다.

기업의 두뇌들을 활용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매수 공격을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

M&A를 방어하는 방법은 이처럼 다양하다.

이는 곧 공격방법도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내년부터는 대량주식취득이 가능해지는 등 M&A시장은 "그야말로
서부개척시대"를 맞게 된다.

최선의 수비책은 정보력과 경영능력으로 압축된다.

< 고기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