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희 시집 "남자를 위하여" (민음사 간) 가운데 "소리" ]]]

끓는 쇳물속에 어린 딸을 바치고도
해와 달이 예순번을 바뀐 후에야
비로소 완성을 보았다는 에밀레종도
처음엔 소리가 없었다네.

종신 속에 기포가 많아
헛구멍들이 소리를 다 잡아먹은 거지.

그래서 허공에 매달리기
십 년 이십 년 백 년... 그렇게 바래지기
또 오백 년... 헛것들이 다 사라지고
자연히 구멍이 메워져서, 어느날
지잉, 징
하늘 땅을 울렸다네.

오, 허공에 매달리기 올해 겨우 마흔 해
내 몸 속을 흐르는 바람길 수천 리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