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지방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의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대입공부만하며 술마셔 본 적이 거의 없을, 고교를 갓 졸업하고 들어온
10대의 후배 신입생에게 선배들이 냉면그릇에 부은 소주를 반강제로 마시게
하여 1명은 숨지고 1명은 병원신세를 졌다고 한다.

우리의 음주문화는 한마디로 광란적이다.

가학적이며 자학적이고 집단 히스테리적인 데가 있다.

잘못된 음주문화가 더이상 방치할수 없는 위험수위에 있음을 경고하는
사례로 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건복지부가 "술을 지나치게 마시거나 강요하지 말자"는
금주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는 것은 그만큼 음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과음이나 폭음이 건강을 해치고 목숨까지 앗아가는등 우리 가정과 공동체에
불행을 안겨주는 사회악이라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학교선배나 직장선배.상사가 남녀성별이나 개인적인 체질을
무시한 채 치사량에 이르는 술을 강제로 권하고 이를 거절하면 조직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심지어 무능력한 것으로까지 치부되는 현상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음주문화중 가장 나쁜 폐해는 빨리 마시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취하는 집단 음주악습이다.

이런 고약한 술버릇은 80년대들어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된 군사문화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군사독재시절 군부를 비롯하여 정계 등을 중심으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강화하고 조직에 일체감을 불어 넣기위해 시작된 폭탄주 돌리기가 그 동안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민정부들어 군사문화의 찌꺼기 청소에 앞장서야 할 대학캠퍼스
에서 폭음악습이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하니 개탄할 일이 아닐수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어른세대가 물려준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죽음에까지 이르게하는 음주문화를 하루라도 빨리 청산해야 한다.

술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우리 한국의 "폭탄주"가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보건당국이 벌이는 금주캠페인에 사회 각계각층이 적극 동참해야
한다.

하지만 관이 이끄는 캠페인보다는 민이 앞장서는 국민운동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와 함께 술주정이나 음주사고에 지나치게 관대한 관행을 고쳐야 한다.

술마시고 저지르는 잘못을 눈감아 주는 사회풍조를 개선하지 않고는
새로운 음주문화는 뿌리를 내릴수 없기 때문이다.

김상규 <서울 서대문구 홍은3동>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