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부는 공진청을 해체하고 그대신 중소기업청의 조직을 8개국으로 편성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지난 5월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중소기업청을 신설하라는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청 신설안에 대해 정부 부처간은 물론이고 업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즉 신설될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과 관련이 많은 통상산업부에 둘 것인지,
아니면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두어 보다 강력한 위상을 정립할 수 있을 지가
그 하나이다.

전자의 경우 중소기업청의 권한과 기능문제로 재정경제원과 통상산업부간에
다소의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관련 업계에서는 후자를 지지, 이른바
중소기업청의 위상과 관련하여 혼선이 있음을 본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중소기업 지원문제가 경제의 최대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상황에서 중소기업청의 기능이나 다른
기관과의 역할 분담에 대한 충분한 검토없이 발표된 신설계획은 총선거를
의식한 선심정책이 아닌가 의심하는 견해도 있다는 점이다.

관련된 정부부처나 산업계 대부분의 관심과 이목은 주로 중소기업청의
위상에만 쏠리는데 공업진흥청의 주업무인 우리 산업의 표준화와 품질경영
분야의 진정한 발전을 바라는 입장에서 소견을 간단히 개진하려 한다.

지난 70년대 초반 상공부의 외청으로 발족한 공업진흥청은 4반세기동안
우리나라의 공업진흥을 위해 커다란 공헌을 해 왔다.

발족 당시는 우리산업에서 수출입국이 제창되던 시기이므로 공산품의
품질개선과 그의 관리가 절실하게 요망됐기 때문에 공업진흥청의 위상은
높게 평가됐고 공헌도 또한 컸던 것이 사실이다.

1973년에 발족된 공업진흥청은 표준화와 품질경영 활동의 정착을 위해
75년 품질관리 추진 본부를 설치, 범산업적인 QC활동을 전개했고
"품질관리대상"을 제정해 산업계를 독려했다.

또 81년이래 공장 품질관리 등급제도를 실시하여 특히 중소기업의 품질수준
향상에 노력했다.

80년대 후반부터 확산된 노사분규로 침체된 우리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QC운동을 품질경영(QM)운동으로 전환하고 이듬해에는 국제 품질보증
시스템(ISO 9000및 14000)의 국내 인증을 실시하는등 우리산업의 품질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근래 우리산업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현실에서
볼때 "공업진흥"보다는 "산업진흥"이라는 어휘가 잘 어울리듯이 공업진흥청
의 리엔지니어링은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중소기업청의 위상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표준화와
품질경영 사업은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최근 일부 보도에 따르면 통산산업부는 공업진흥청에서 관장하던 품질인증
과 표준화업무등을 국립공업기술원에 이관시킨다는 당초의 방침을 철회하고
통상산업부내에 관련국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업진흥청 조직개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본다.

특히 현재 구상되고 있는 공업진흥청의 공중분해안의 경우 많은 혼란과
손실이 예상된다.

현행 업무중에는 아예 없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다른 부서로
이관되는 것도 있을 것인데, 가령 우리산업의 품질경영 활성화에 당근역할을
해 왔던 한국품질대상(대통령상)의 존폐는 물론, 이 제도를 운영하는 주무
부서가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서 그 효력도 다를 것이라 본다.

한 예로 ISO9000시리즈가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91년 공업진흥청
국제표준과에서 관장하는 "ISO/TC 176 위원회"가 조직돼 기초작업을 활발히
전개하던중 직제개편과 더불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후 후속작업을 위해 93년에는 "품질경영및 품질보증위원회"로 개칭돼
공진청의 제도표준과에서 관장하던 중 94년에는 전자정보 표준과로 이관,
필요할 때만 소집되어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상품에 밀려 고전하던 구미 각국에서는 요즈음 품질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가 산업계를 독려하고 있음을 본다.

가령 미국의 "맬콤 볼드리지상"제정과 영국의 범국가적인 "품질캠페인"
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 산업의 품질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가적인 품질향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산업의 품질경쟁력은 어떤가.

최근 한국은행이 분석한 수출상품 점유율 자료에 의하면 우리의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과 일본에서 우리상품의 시장점유율이 몇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산업의 품질경쟁력이 확실이 나아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서, 우리
모두(정부와 산업계)의 안일한 자세를 꼽을 수 있다.

얼마전 한국산업의 품질경영문제를 논의하던 심포지엄에서 어느 토론자의
주장인즉, 우리 경영자가 품질경영을 경시하는 것은 품질개선을 위해 투자
하고 공을 들이는 것보다 로비활동을 벌이는 게 성과가 훨씬 크기
때문이란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 대부분이
기업에서 조성됐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게 한다.

이제 우리기업은 정부난 정권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게임의 규칙
속에서 경쟁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번 공업진흥청의 리엔지니러잉은 일부에서 우려하는 선거용 선심정책의
희생물이 아닌, 국가 전체적인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전개돼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