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원 현대상선 상임고문(70)은 여전히 일선에서 뛰고 있는 "회장대우"
현역 경영인이다.

연초 회장직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아침 7시20분에 출근해 집무하는
일과나 사무실 비서진 등 "근무 환경"은 변한게 없다.

현대상선 회장인 정몽헌 현대그룹 부회장과 박세용 현대상선사장
(종합기획실장 겸 현대종합상사 사장)이 해운업에 관한 실무를 현고문에게
전적으로 위임했기 때문이다.

그가 없이는 한국의 해운업계가 방향타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해운인의 공통된 인식이 현고문을 영원한 현역으로 위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고문은 지난 40년간 한국을 해운 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온 업계의 산 증인.지난 56년 한국은행을 나와 근해상선 전무로
해운업에 뛰어들었다.

이어 신한해운사장을 역임했고 현대상선의 전신인 아세아상선의
창립에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젠 은퇴해 보람을 만끽하고 있어도 좋을 "노병"이기를 거부하는
현고문.

우연하게도 그가 고희를 맞은 날(1월10일) 서울 무교동 현대상선 사옥
15층의 상임고문실에서 현고문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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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업계에 발을 들여 놓으신지가 올해로 40년이나 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업계에선 현고문을 해운업계의 거목이자 산증인이라고 합니다만.

원래는 한국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다면서요.

<> 현고문 = 해운업계에 들어오게된 것은 전남방직 창업자(고 김용주씨)
인 장인 어른 때문이었습니다.

56년엔가 한국은행을 관두고 재무부 과장으로 와달라는 제의가 있어
장인께 "재무부로 가려고 한다"는 뜻을 말씀드렸지요.

그러자 그 분께서 "한은같은 좋은 직장을 나오라고 할수 없어서 그동안
말을 못했다.

재무부로 갈 바에야 내 회사에 전무로 들어와 사업을 도와달라"고
말씀을 꺼내시더군요.

그래서 장인이 운영하고 있던 신한제분과 근해상선의 전무로 옮겼습니다.

그뒤 신한해운을 설립해 20년간 경영하기도 했지요.

-현대상선의 전신인 아세아상선이 지난 76년 창립되는 과정에서
정주영 명예회장과 사돈(정몽헌 현대그룹 부회장이 현고문의 사위)을
맺으셨다는데 그 얘기가 궁금합니다.

<> 현고문 = 정회장과는 친구가 먼저고 사돈은 나중입니다.

당시 정회장은 울산에 현대조선을 지으면서 홍콩의 선주인 CY 퉁과
YK 파오를 한국에 데려왔습니다.

세계 3대 선주안에 꼽히던 이들 선주로부터 선박을 수주해 현대조선의
기반을 닦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일단 서울까지 초청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차를 타고 힘들게
6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울산까지는 같이 가자고 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정회장은 내게 직접 전화를 하고 내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때 내가 경영하던 신한해운이 홍콩선사들의 한국대리점을 하고 있어
그쪽 선주들과 나는 교분이 두터웠거든요.

결국 내가 직접 울산까지 홍콩선주들을 대동하고 같이 내려갔습니다.

-울산에서 수주를 따냈습니까.

<> 현고문 = 울산에 가보니 허허벌판에 도크를 파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황당해하는 홍콩선주에게 내가 말했습니다.

정회장의 눈을 보라고.사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또 배를 안지어주면 보증을 선 외환은행이 갚는 것이니 아무 걱정
없다는 식으로 설득을 했지요.

일본에서 철판을 도입하고 독일에서 엔진을 수입해 탑재하면 충분
하다는 기술적인 제언도 함께 곁들였습니다.

결국 현대가 2척을 수주했습니다.

그 이후 정회장과 아주 친해졌습니다.

가족동반으로 파티를 하기도 하면서 제 딸과 몽헌(현대그룹부회장)간의
혼사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겁니다.

-듣기 거북하실지 모르겠으나 해운업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은 그다지
좋다고는 볼수 없습니다.

"마치 도박과 같지 않느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크게 배팅을 해서 한번 성공하면 왕창 돈을 벌수도 있고
그 반대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 현고문 ="투기적"이란 이미지가 있는건 사실이지요.

그렇지만 해운업계에서는 항상 나름의 시황전망을 합니다.

문제는 이게 잘 안들어맞을 때가 왕왕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의 해운왕이라고 불렸던 레모스라는 사람은 생전에 "연초가
되면 신문기자들이 찾아와 그 해의 시황을 묻곤해 나름대로 대답을
해준다.

그런데 연말에 보면 그 예측이 맞은 적이 한번도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답니다.

그처럼 시황전망이 어렵다는 얘깁니다.

-그렇지만 올해도 해운경기를 미리 짚어보셨겠지요.

<> 현고문 =일반적으로 올해는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한 정기선
운항쪽에선 채산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들 합니다.

세계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고 컨테이너 수송선박의 용량이 커지기
때문에 해운회사간의 덤핑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게 근거지요.

그러나 내 직감은 전혀 다릅니다.

올해는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한국에서는 총선이 있습니다.

과거의 예로 볼 때 선거가 있는 해에는 불황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경기를 부양해놔야 표를 얻을수 있을 테니까요.

이처럼 오랜 경험을 통해 육감과 짐작으로 하는 시황전망이 실수를
예방하는 적이 많습니다.

-"해운업은 한 나라의 산업과 부침을 같이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문명은 서진한다"는 말도 있고요.

이 두개의 격언을 조합해 보면 그동안 대서양 동쪽의 유럽, 태평양
동쪽의 미국에 이어 바야흐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문명과 경제의
중심축이 되면서 해운산업도 크게 융성할 것이라는 결론을 낼 수도
있겠습니다.

<> 현고문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군요.

나는 특히 중국경제가 보이고 있는 빠른 성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해운시장을 봐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극동지역의 수출입 물동량이
미주나 유럽을 능가할 정도로 급신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동아시아 해운시장이 세계 최대가 될것 같습니다.

-한국만 보면 어떻습니까.

한국의 해운산업은 해상운임수입기준으로 이미 평균적인 경제력 수준을
웃도는 세계 9위에 올라있는 만큼 앞으로 더 이상의 발전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 않습니까.

<> 현고문 =한국은 3면이 바다여서 해양강국이 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56년 해운업계로 들어올때 장인어른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해양은 공동의 소유이니까 공업이 시원치 않고 가진 것이 없는 나라라도
제3국간 수송을 통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40년이 지난 오늘날 되새겨봐도 딱 들어맞는 말씀이었습니다.

한국도 그리스나 덴마크처럼 제3국간 수송을 통해 해운을 발전시켜오지
않았습니까.

중국의 천진이나 상해의 항구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해운산업은
마침 좋은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

중국의 수출물량을 한국이나 홍콩의 외항으로 일단 끌고와야 됩니다.

한국의 서해안에 국제적인 항구가 조성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해운업은 기복이 심하고 한번 불황이 오면 무서운 타격을
입어야 하는것도 사실 아닙니까.

<> 현고문 =그렇습니다.

해운업은 특성상 아주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산업입니다.

그러나 리스크가 크다는건 반대로 매력적일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내 경우는 어쩌다 다른 산업을 대할 때는 영 간지럽고 싱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아직도 일부 세간에서는 해운업 종사자를 "뱃사람"이라고 부르지요.

썩 좋지만은 않은 뉘앙스가 담긴 말인데요.

<> 현고문 =옛날 집안의 한 친지분께서 나에게 "양반이 어떻게 배회사를
하느냐"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때 무역업을 하는 것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얼마전 현대그룹이 경영진 세대교체를 단행했습니다.

현고문께서도 회장직을 떠나 2선으로 한발짝 물러나셨습니다.

요즘 대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세대교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현고문 =당연히 올것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섭섭한 감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현장을 쫓아가 일하기엔 체력이 달리고 모험도
싫어해 매사 소극적으로 되기 십상이지요.

그렇지만 젊은 경영자들의 실수를 막으려면 나이 많은 경영자도
필요하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습니다.

나는 세계 어느 항구를 가봐도 수심이 어느정도이며 물동량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느낌으로 알수 있거든요.

-현고문께서는 이력이 다양한 편입니다.

대학에선 영문학을 전공했고 법무분야 경력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 현고문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도 상과대학을 나온 뒤에 들어갔습니다.

법률 공부는 한국은행 시절 외국부에서 근무한게 인연이 됐지요.

신용장 담당계장을 6년간 하다가 해운업계로 옮겼는데 해운회사간
국제적 분쟁에 많이 부닥쳤습니다.

내가 신용장 업무에 밝다보니 국제법 적용사례가 많은 해운업계에서
자연히 국제적 분쟁해결사로 통하게 된 겁니다.

덕분에 국제상사 중재원을 30년정도 지내기도 했고요.

-고희날에도 이렇게 출근을 하셨습니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 현고문 =지난 40여년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규칙을
지켜온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나 할까요.

술은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위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일요일엔 골프를 치고 있습니다.

-연극과 발레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습니다.

<> 현고문 =발레와 서커스 관람을 무척 좋아합니다.

브리티시, 볼쇼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레단의 공연은 죄다 봤습니다.

많이 보니까 자꾸만 전문지식과 비판능력이 쌓이더군요.

요샌 웬만한 비평도 할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서커스도 안본 것이 별로 없을 정돕니다.

또 동물을 좋아해서 시드니 등 세계 각국의 도시를 들를 때면 으례
동물원과 해양공원을 찾곤 합니다.

[ 대담 = 유화선 부국장대우 산업1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