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의 커다란 질곡으로 작용해 왔던 12.12사건이 마침내 법원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21일 검찰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군형법상 반란수괴등의
혐의로 기소한 것은 그간 "역사적 평가"라는 명분아래 그 판단이 미뤄져
왔던 이 사건도 결국 사법부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됐음을 의미한다.

또 12.12사건이 지난 81년 이른바 신군부 인사들에 의해 창출된 5공 정권의
맹아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검찰의 이날 기소로 5공 정권자체에 대한
정통성 시비에도 본격적으로 불이 당겨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전씨가 수감이후 지금까지 "5공의 정통성이 부인되는 사태를 인정할
수 없다"며 단식을 하고 있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사전 구속영장에 의해 구속된 전씨에
대한 기소는 결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지난 11월24일 김영삼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방침이 발표된 후 이미 예고
됐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주변에서는 전씨에 대한 이날 기소를 두고 현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의 일환일 뿐이라는 지적도 같은 무게로 대두되고 있다.

이는 최근 검찰의 12.12사건 재수사 진행 상황을 볼 때 잘 나타난다.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는 지난해 10월 발표된 서울지검 공안1부의
수사결과에 근거, 일사천리로 진행돼 왔다.

검찰은 12.12반란의 주체인 "경복궁 모임"참석자 13명과 신군부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한 보안사 인사 5명등 모두 54명의 관련자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 지난 수사결과 발표된 이미 드러난 군사반란혐의를 재확인하는 데
치중해 왔다.

검찰수사결과 예견된 대로 신군부측이 치밀한 사전 계획아래 조직적으로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을 일으킨 사실이 또한번 명백히 드러났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10.26사건 수사를
빌미로 정승화육군총장겸 계엄사령관을 불법 연행하고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진압군 병력들을 제어해 가면서 군권을 빼앗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전.노씨에 대한 기소로 12.12부분에 대한 수사는 일단란
지었지만 무언가 석연치 심정인 것 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이는 검찰의 이번 재수사가 결코 자발적인 결정에 의해 실시된 것이
아니라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검찰은 당초 전씨등 신군부 세력의 군사반란 혐의사실을 명확히 밝혀
내고도 이들을 기소유예함으로써 형사처벌을 유보했었다.

물론 그 이유는 "관련자중 전직 대통령이 두 사람이나 끼여 있어 기소할
경우 사회적 혼란을 줄 우려가 있는 만큼 법적 판단보다는 역사적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검찰이 당초 입장을 바꾸게 된 것은 5.18특별법 제정이라는 수사
외적 요인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재수사 착수 초기 특별수사본부의 고위 관계자는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상황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고 전두환전대통령도 "개전의
정"을보이지 않고 있어 기소유예를 철회한다"며 사정변경사유가 발생해
재수사하게 됐음을 애써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는 검찰관계자의 일종의 자위일 뿐 검찰이 정치적 풍향계에 따라
마지못해 수사권을 발동한 것이라는 비판이 더 큰 설득력을 가진게 사실이다.

특수부의 한 검사는 이날 "지난 80년 "서울의 봄"이 차디찬 군화발에 의해
짓밟힌 뼈아픈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 되짚어 보고 싶어한다"며 "역사를 다시
푼다는 마음으로 이번 수사에 임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여튼 전씨 기소는 지난 81년 신군부인사들이 창출한 5공정권이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법적 심판의 시발점
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성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