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규 < 대통령 비서실정책기획비서관 >

지난해 11월 호주 시드니에서 대통령의 세계화구상이 제시된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세계화에 대해서는 세계화 추진위원회 위원등 각계의 많은 전문가
들이 이론적인 틀을 제시해왔고 일반국민들도 나름대로 이해를 넓혀온
것으로 생각된다.

언론이나 지식인들도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전략을 비판할때 세계화라는
척도를 가지고 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는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세계화개념이 상당히 확산되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일부 지식층을 중심으로 아직도 세계화에 대한
의구심과 개념의 혼란이 남이있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세계화의 개념에 대한 혼란이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세가지 이유가
있는 것같다.

첫째는 아마도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크기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상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세계화의 개념은 시대적인 조류로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현상(Fact, Phenomenon)이자 이를 문명사적 대변혁으로
인식하는 인식의 틀(Framework)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Target,
Objective)인 동시에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수단(Procedure, Strategy)
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세계화를 보다 명쾌하게 간략히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즉 금년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분명히 나와 있듯이 "변화와 개혁"에
대해 "목표성"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쉬울
듯하다.

지금 세계는 탈냉전, 탈20세기, 탈공산주의, 탈자본주의, 탈근대산업사회,
탈민족국가라는 문명사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19~20세기의 근대세계질서의 단순한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
중세 근대를 잇는 "세계화"시대라는 역사의 다음 토막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가 변하고 있는 모습을 직시하고 미래에 대해 옳은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자는 것이 세계화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화는 새로운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철학이라고 할수있다.

세계화의 개념혼란이 일어나는 둘째이유는 일반시민이 갖고있는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정부정책이 바뀌고 기업의 전략이 달라지는 것은 이해를 하겠는데
"나"하고는 직접 관련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세계화는 일반시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쉽게 발견할수 있다.

예를들어 세계화 차원에서 추진되어 온 법조개혁은 당장은 아니지만 지금
제시된 방안이 모두 집행될 2000년께에 즈음해서는 국민들 개개인이
이용하는 법률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게 될것이다.

교육개혁 역시 이를 착실히 추진해 나갈 경우 새로운 준칙에 의해
대학설립과 정원등의 규제가 대폭 완화되고 그에따라 대학문호가 대폭
개방되어 사회의 필요에 따라 인재를 양성하는 체제로 전환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민가계의 사교육비 부담이 대폭적으로 줄어드는 동시에
온 집안이 입시의 질곡에 매여있던데서 놓여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세계화는 "나"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것이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에 다름아니다.

즉 그 동안에는 양적 팽창에만 주력해 왔지만 이제는 뭔가 인간다운 삶을
찾아나가는 것이 바로 세계화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들의 사고,관행,제도속에 남아 있는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것들을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개념혼란이 초래되는 셋째 이유는 일부지식층의 냉소주의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세계화 기치아래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개혁정책이 이익집단의 반발이나
미숙한 주변여건 때문에 미흡한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일부 지식층은
이를 보고 "세계화가 고작 그거냐"하는 냉소적인 의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가 갖고 있는 목표성이나 전략성이라는 큰 "숲"을 보지 않고
하나의 결과라는 "나무"만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두개 나무가 기대만큼 자라지 않았다고 해서 이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세계화라는 도도한 흐름의 숲이 결코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세계화의 목표성과 전략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그에 부합하는
개혁정책에 동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세계화추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비단 우리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는 세계화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한창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산하기구중 하나인 개발센터(DC)에는 세계화만을
연구하는 부서가 별도로 설치되어 세계화의 현상과 과제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또한 OECD 공공관리위원회에서는 장.차관급의 고위정책당국자가 참석하여
세계화가 각국의 정책결정에 미치는 영향과 각국의 대응사례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 9월27~28일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회의에서 캐나다 대표가
한국대표인 필자에게 지적했듯이 "한국이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세계화에
조직적인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데 감명 받았다"는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화는 세계 모든 나라가 수용할 수 밖에 없는 대세이다.

우리는 개화기 당시 세계적 추세였던 산업화.근대화에 참여하는데 실패하여
많은 시련과 도전을 극복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을 안고 있는 우리가 새롭게 세계적 대흐름으로 다가오고 있는
세계화에 남보다 빨리 적응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