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7월16,17,18일 연일 계속 내린 비는 한강유역에 650 의 폭우를
쏟아부었다.

18일 한강의 수위는 뚝섬13.59m,인도교 11.66m,구용산 12.74m로
사상 최고의 기록을 남겼다.

영등포 용산의 제방이 넘쳐 하안일대 3만여정보가 물바다로 변했다.

동부이촌동 뚝섬 송파 잠실 신천 풍납리 일대가 가장 피해가 심했다.

역사에 드문 일대재난이었던 이 "을추연홍수"의 전국적 피해는
사망.실종 790명,가옥유실.파손 10만3,000여채에 이르렀고 피해액은
1억300만원이었는데 이 액수는 당시 조선총독부 1년산의 58%에 해당되는
것이었다니 실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재난이었다.

지금은 이름조차 잊혀져 버렸지만 "을축년홍수"하면 기억해 두어야
할 사람이 있다.

라청호(1875~1934)다.

당시 봉은사주지였던 청호는 절대안에 있던 잠실 부리 신천의 세마을이
물에 잠기자 나무위에 올라가 울부짓는 사람들을 708명이나 살려내
"살아있는 부처"라고 칭송을 받았던 인물이다.

""저들을 구제치 못하면 불법의 본뜻인 자비가 어디 있으리오"하면서.
강가에 이르러서는 사공을 부르며 혹은 의로써 권하고 혹은 이로써
유도하고 혹은 눈물로써 슬피호소하고 혹은 성난 표정을 지으며
힐난하였다" 사람들을 구해낼 생각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싼값으로 복선
5척을 빌리고 사람들을 동원해 목숨을 건 인명구조에 나선 그의
활약상을 당시 발간된 잡지 "불교"는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청호선사의 선행은 전국에 알려져 사회의 저명인사 110여명이 그를
칭송하는 시 문 서 화를 보내왔다.

이남재 최인 권상노 김규진 오세창 이능화 정인보 여운영 김은호등
모두 귀에 익은 명사들이다.

그 가운데는 한국인 최초의 목사 최병헌,경신학교장 아드블유 쿤스등
기독교인도 끼어있다.

이것들은 "부양비첩"으로 묵여져 구제받은 주민들이 1929년에 세운
"청호화상 수해구제공덕비""청호화상부도"와 함께 지금도 봉은사에
남아있다.

지난 23일부터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역과 충남서해안지역에 쏟아진
집중호우와 태풍제니스상륙으로 한강 남한강 금강유역이 큰 물난리를
겪고 있다.

연례행사처럼 계속되는 재난이 짜증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난의
위기속에서 자신의 안위를 잊고 인명구조와 복구작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절로 힘이 난다.

25일새벽 무궁화호승객 440여명을 어둠과 폭우속에서도 무사히 구조해낸
증평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의 헌신적 활약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