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백작이었던 앙리 프랑스와 노엘(1821~1861)은 괴상한 성벽을
지닌 애서가였다.

그는 돈에 구애를 받지 않고 희귀본들을 다 모았다.

그런데 그는 그 책들을 소장고만 있으려니 마음에 차지 않아 기발한 생각을
해 내게 되었다.

그는 1841~61년 사이에 5년씩의 간격을 두고 다섯번이나 애써 모은 책들을
모조리 경매장에 내놓았다.

그때마다 그도 그로에 나다나 누구보다도 비싼 값을 불러 그 책들을 도로
사들였다.

경매때마다 20%씩의 수수료를 경매주최측에 지불하다 보니 책값과 맞먹는
액수를 더 내놓은 셈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의 귀중한 책들을 다른 사람과 경쟁하여 사들이는 스릴
이 어떤 것과도 비교할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하곤 했었다.

진짜 애서가가 아니고선 그의 이러한 기분을 이해할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와같은 애서가의 괴벽이 희귀본들의 값을 엄청나게 올려
놓았을지도 모른다.

1455년 독일 마인츠에서 초간된 "구덴베르크의 구약성서"가 1987년 뉴욕
크리스티경매장에서 인쇄본으로선 경매사상 최고가인 539만달러(약 41억원)
에 팔린 것도 애서기벽의 소산일수도 있다.

엊그제 중국 북경에서 열린 고서경매에서 허준(1546~1615)의 "동의보감"
초판본이 예정가의 10배를 넘는 38만원(약 3,800만원)에 한 홍콩인에게
팔려 "동의보감"은 1613년(조선조 광해조5년)에 한국전래의 의서 83종과
한덕이래의 중국의서 70여종을 상고 집대성하에 25권25책으로 초간되었다.

그뒤 한국에서는 2번 복간되었으나 중국에서는 5번(최근에 2번), 일본
에서는 3번이나 번간되어 한국의 고서로서는 중국과 일본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이 되었다.

"동의보감"을 가리켜 청국판의 서문에는 "천하의 보배를 천하와 함께
했다", 일본판의 발표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신선의 글이자 의료계에서
가장 소중한 책"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 정도로 "동의보감"은 동양의학의 보감이자 백과전서로서의 위치가 확고
하다는 얘기다.

"동의보감"의 초판보들이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등에 소장되어 있어
세상에 유일본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애서가들에겐 이번 경략가가 그
희소가치만큼 높은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을 것이다.

생존 중견작가의 그림 한점값에도 못미치니 말이다.

언젠간 그 가치에 합당한 대우를 받게 될 날이 올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