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습인이 보옥의 말을 조금 알아듣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이 그렇다면 나 같은 시녀야 선녀의 얼굴조차도 쳐다볼 수
없겠네요.

그래 경환 선녀의 말에 선녀들의 오해가 풀렸나요?"

"그럼 풀렸지. 경환 선녀가 나를 불쌍히 여겨서 이 선계로 데려왔다고
하니까 다른 선녀들도 내가 안쓰럽다는 표정들을 짓더군. 그러면서 그
다음부터는 친절하게 대해 주었어.

선녀들이 나를 군방수 향내가 가득 풍기는 방안으로 데려가 우선 차를
대접해주더군.

모두 빙 둘러앉아 있는 중에 어린 소녀가 찻잔을 들고 왔는데, 그
은은한 향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더군.

혀끝을 대어 조금 맛보니 그 맛이 여간 신묘하지가 않아.

그래 경환 선녀에게 이 차는 무슨 차냐고 물었지. 그러자 경환 선녀가
대답하기를, 천홍일굴 차라고 하더군"

"천홍일굴요?"

습인이 그 차 한 모금이라도 맛보았으면 하는 눈빛으로 보옥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차를 마실 준비라도 하는 듯 습인의 입이 반쯤 벌어져 있었다.

그 발그레한 입술이 먹음직스러운 무슨 작은 과일과도 같이 여겨졌다.

보옥은 지금쯤은 습인의 입술에 자기 입을 맞추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천천히 고개를 숙여 습인의 얼굴로 접근하였다.

습인은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뒤로 물리려 하였다.

그러나 보옥의 입술을 피할 방도는 달리 없었다.

보옥은 경환 선녀가 가르쳐 준대로 습인의 입술과 혀와 이빨을 역시
자기의 입술과 혀와 이빨로 차근차근 애무해주었다.

보옥의 침이 습인의 입안에 섞여들자 습인은 그 침이 천홍일굴 차라도
되는양 허겁지겁 마시었다.

아니, 마신다기 보다 숨이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꿀꺽거린다고 하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었다.

그만큼 습인에게 있어 첫 입맞춤이 되는 그 입맞춤의 자극은 감미롭기
그지없고 격렬하기 그지 없었다.

보옥은 습인의 입술을 핥으면서 어쩌면 이 계집의 입술은 자기 입술을
위해 선녀가 특별히 만들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몇차례 서로 침을 꿀꺽꿀꺽 삼키는 진한 입맞춤이 있은후, 보옥이
천홍일굴 차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천홍일굴이란 문자 그대로 천가지 잎들을 따서 한 군데로 모아
끓였다는 뜻이지.

그것도 꽃잎에 맺힌 이슬들만 받아 선화영엽들을 넣고 끓였다고
하더군"

"얼마나 많은 꽃잎에서 이슬을 받아 모아야 차를 끓일 수 있을까요?"

습인이 아직도 입안에 괴어 있는 보옥의 침을 다시 한번 꿀꺽 삼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