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앞수표를 부도처리했기 때문에 우리에겐 지급책임이 없다"

"자기앞수표발행인인 은행이 피사취를 이유로 부도처리한 경우는 없다.
부도사유가 정당하지 않기때문에 평화은행은 마땅히 돈을 지급해야 한다"

덕산그룹부도파문으로 평화은행과 한일은행이 심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결과에 따라선 6억5천만원의 돈이 왔다갔다한다.

따라서 두 은행은 법적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두 은행간 다툼의 핵심은 자기앞수표발행인에 의한 피사취부도처리의
정당성여부. 문제의 자기앞수표를 발행한 평화은행은 수표발행자체가
일종의 사기(피사취)에 의한 것이었음으로 부도처리한게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지급책임도 없다는 것.반면 이 수표에 의해 현금을 지급한
한일은행은 자기앞수표의 발행인(은행)이 피사취를 이유로 부도를
내는 경우는 없다며 부도처리는 타당치 않으므로 돈을 평화은행이
지급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의 흐름은 이렇다.

덕산그룹은 1차부도가 나던 지난달 27일오전 평화은행무교지점의
덕산시멘트제조당좌계정에서 8억5백40만9천3백63원(당좌예금 4억6백87만
8천6백88원,당좌대출 3억9천8백53만6백75원)을 인출,자기앞수표를
발행했다.

덕산그룹은 이 수표를 한일은행무교지점을 통해,주거래인 한일은행
신사동지점에 송금했다.

그리고 그중 6억4천4백만원을 15개 계열회사직원 4백명에 대해 급여자금
으로 처리토록 요청했다.

한일은행에선 종업원계좌에 입금을 시작,4억4천만원정도를 입금처리했다.

문제는 이 때 발생했다.

3개의 덕산계열사가 1차부도를 냈다.

한일은행신사동지점에선 급히 급여이체를 중지했지만 이미 4억4천만원은
이체된 상태였다.

평화은행에선 오후5시경에 긴급히 자기앞수표에 대한 지급금지조치를
취했다.

사유는 일종의 사기에 의한 피사취.덕산그룹이 부도를 뻔히 알고서도
부당하게 자기앞수표를 발행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자기앞수표는 평화은행에 의해 부도처리됐다.

그러나 한일은행에선 부도확인번호의 부여를 거절했다가 지난 3일에야
금융결제원어음교환부장의 중재에 따라 교환차액을 결제했다.

그리고 3일 2억5백만원도 나머지 종업원의 급여자금으로 지급했다.

현재로선 한일은행이 6억4천5백만원을 고스란히 손해보고 있다.

은행에서 돈을 내줬지만 해당 수표는 부도처리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일은행은 그러나 금융결제원의 소청심사위원회에 제소,돈을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법적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평화은행의 부도사유가 정당치 않다는 것이다.

자기앞수표 발행시점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 수표는 정당한
것이고 따라서 지급책임은 당연히 평화은행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대해 법조계와 금융계에서도 법적다툼이 일어날 경우 한일은행의
승소를 점치고 있다.

한일은행이 수표법 21조상 "선의의 취득"이 인정되고 있는데다 평화은행이
피사취부도사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에대해 평화은행은 자기앞수표발행과정에서 덕산그룹에 일종의 사기를
당한 것이고 만일 한일은행이 자기앞수표가 정당한지에 대해 중간에
조회를 해봤더라면 지급은 막을수 있었다며 부도의 정당함을 주장하고있다.

어쨌든 부실기업에 대해 철저한 심사없이 일단 돈을 내주었다가 문제가
발생하자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두 은행의 얄팍한 처사로 인해 이번
분쟁이 불거졌다는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하영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