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가치관의 시대적 적합성이 계속적으로 시험받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어떤 방향, 어떤 형태의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검토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자본주의나 기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 또한 예외는 아니다. 우선 자본주의
하면 보통 물질적인 것을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휴머니즘이 없다,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들을 많이한다.

동도서기,천민자본주의라는 말에는 자본주의에는 정신적 가치는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각 개인이 자유로운 영리활동을 추구할경우 시장기구에
의해 최적의 생산활동이 보장된다는 것을 기본원리로 하고있다. 이 때문에
흔히 시장기구가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기구 자체는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하이에크는 시장기구란 효율성의 시각에서 분석되어야지 도덕적인 판단의
대상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인식변화 또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은 우리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요즈음은 취업시즌이고 많은 젊은이들이 대기업을 찾고있다. 그러나
대기업하면 거대한 기계속의 부품이라거나 창의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집단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기업이 나쁘니까 거기 다니는 사람도 나쁘다"는 식의 극단론을 펴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그중에서도 대기업을 이야기할때 "덩치가
너무 크다, 효율성에서 떨어진다, 경제력 집중이다"하는 지적들이 있다.

하지만 덩치가 커서 비효율적이라는 말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증명되지 않았다.

대기업은 인적자원이나 자금등 여러면에서 중소기업보다 크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투입되는 양에 비해 산출되는 양이 얼마냐를 비교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현재 국제경쟁력을 가진 7개 분야들 (1.전자 2.자동차 3.철강
4.조선 5.건설 6.섬유소재 7.석유화학)은 모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업종에서 가능했다.

모범적으로 중소기업을 육성한 사례로 대만을 많이 거론한다. 우리는
대만을, 또 대만은 한국을 부러워한다. 어느나라건 반드시 대기업을 해야
한다, 혹은 중소기업을 해야된다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고 본다.

각자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이 국내에서는 크다고 하지만 세계에 나가면 아직
영세기업이다.

선진국의 대기업들이 대륙간탄도탄(ICBM)이라면 우리의 대기업들은
105 곡사포 수준이다.

현대자동차의 매출액은 도요타 자동차의 9분의1밖에 안되고 삼성물산은
미쓰이 상사의 14분의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50대 재벌의 788개 계열사의 총이익은 25억달러로 도요타 자동차
1개 회사의 30억달러보다 작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문제도 냉정한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송병락교수는 모범기업의 척도로서 미국기업은 이윤의 극대화,일본기업은
시장 점유율, 한국기업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자료에 의하면 이탈리아 기업의 98%, 스위스
기업의 90%, 영국기업의 75%가 창업자의 가족이 소유 경영하는 가족 기업
이다. 대만도 비슷하다.

미국의 경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잘되어 있는데,레스터 서로는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일본기업에 밀리게 되었다고 보고있다.

미국의 기업은 소액 주주들이 3개월 내지 6개월마다 영업이익을 발표
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장기투자를 하기가 힘들다.

정병휴교수는 "미국과 일본은 똑같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우인데
미국에선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오히려 기업이 병들고 일본은 잘된다.

그러나 일본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현재보다 덜 되었더라면 더 잘되었을 ]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교수는 "한국기업들처럼,가히 무지막지하다고
할 정도로,투자를 많이 하는 경우는 없다.

기업가 정신이 세계에서 제일 왕성하다"고 했다.

포터교수는 그 이유로 기업의 소유자가 그룹의 창설자나 그 가족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처럼 전체 주식의 60~70%를 주인도 없는 연금공단같은 데서 관리하면
투자의욕도 떨어지고 국제경쟁력에 대한 관심도 적을수밖에 없다. 내부적
으로 보면 오히려 장기적인 대안없이 소유나 경영이 분리되는 것 그 자체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 시중은행의 경우,5공화국 시절에 정부가 주도하여 정부
보유의 은행주식을 민간에 매각해버린 결과 대주주가 없는,다시 말해서
주인 없는 은행은 되었으나 실제는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형편이다.

국제화.세계화의 성패는 결국 기업의 국제경쟁력에 달려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오래전부터 자체 필요성에 의해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국제화를 추진해왔다.

국제화가 다른 사회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앞서왔기 때문에 문화적
이질감을 낳기도 했고 비판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기업의 국제화는 이론적으로 보면 몇단계로 나누어진다.

미국의 로빈슨교수에 의하면 기업의 국제화는 처음에는 해외영업의 차원
에서 시작됐다가 여러나라에 현지법인을 설립. 운영하는 소위 다국적기업
으로 발전하게 되고 나아가서 원재료의 조달에서 부터 생산 유통 재무의
전과정을 최적화하는 초국적기업을 지향하게 된다.

우리기업은 안팎으로 급격한 환경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더욱 치열해지는 세계경쟁에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는
더욱 엄격한 도덕규범을 갖춘 기업시민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야 할 때다.

지금까지는 효율과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 바라보고 뛰었다면 이제
세계화의 시대에서 효율은 물론이고,사회와의 문화적 연대감을 유지하면서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뛰어야 할때다.

기업과 사회가 경제적.문화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사회 각
부분의 교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어느 일방의 독백이 아니라 기업과 사회
각 분야의 자발적이고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