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자신탁회사 파이어니어는 동유럽 진출에 성공한 대표적 외국기업이다.

파이어니어가 폴란드에 현지법인 "파아어니어 퍼스트 폴리시 트러스트
펀드"를 설립키로 한것은 지난 92년7월.

동유럽으로 몰려들었던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이 투자신탁부문만큼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시장경제체제로 첫 발을 내디딘 폴란드인들은 "투자"라는 개념조차 생소
했다.

인플레율은 연간 50%에 육박하고 있었고 주식시장은 하루가 멀다하고
부침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이어니어는 바로 이런 불안정한 금융환경에 주목했다.

은행 이자율과 주가 상승률이 물가오름세를 따라잡지 못하는 분위기속에서
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파이어니어는 "인플레가 걱정되십니까. 파이어니어로 오십시오"라는 문구를
내걸고 투자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폴란드의 우편시설은 엉망이었고 전화는 사치품으로 여겨질
때였으므로 서방국가에서 처럼 전화와 우편물 공세를 펼 수는 없었다.

대신 폴란드 주요 12개 은행의 5백여개 지점을 판매망으로 이용, 고객을
끌어 들였다.

다행히 폴란드인들이 점차 자국화폐인 즐로티화를 들고 기대반 회의반으로
파이어니어를 찾기 시작했다.

서방선진경제에 대한 호기심과 이를 배우겠다는 의지도 한몫했다.

단 한명의 고객도 없이 12만달러의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파이어니어
폴란드 현지법인은 2년여만에 60여만명의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개가를
올렸다.

같은 기간동안 자산가치는 무려 7천5백배가 뛰어 94년 현재 9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파이어니어가 투자자들에게 안겨준 실질투자수익률은 1백70%.

이제 파이어니어는 폴란드돈이 모이는 집산지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아직은 시작단계일 뿐이라고 파이어니어는 말한다.

앞으로 5년내에 파이어니어는 7천여개에 이르는 우체국에 전산시스템을
도입, 폴란드 구석구석에 침투해 간다는 야심찬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