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31일 서울힐튼호텔에선 "금융인조찬강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최자는 21세기경제인클럽, 강사는 임창열재무부제1차관보.

참석자들은 은행을 비롯한 각 금융기관의 부장급들이 주류를 이뤘다.

정지태상업은행장을 제외하면 말이다.

정행장이 격식에 어울리지 않게 강연회에 참석한 것은 "염불"보다는
"잿밥"때문이었다.

당시는 (주)한양의 산업합리화업체지정을 바로 앞두고 있던 때.

한시가 급했던 정행장은 자신을 이리저리 피하는 임차관보를 만나 확답을
듣기위해 강연회참석이라는 파격을 택한 것이었다.

한양의 법정관리신청-.

이는 정행장에 대한 금융계의 평가를 새롭게 만들었다.

상무에서 행장으로 수직상승한 정행장에 대해 금융계에선 "우려반 기대반"
의 시각을 가졌던게 사실이다.

그러니 취임 4개월만에 전임행장들이 뜨거운 감자로 여기던 한양을 단숨에
정리해 버린 정행장의 과단성에 혀를 내두를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직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의 이력에 비춰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것이다.

정행장은 남산지점차장시절인 지난80년 임원부속실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83년까지 3명의 행장을 모시면서 "대권수업"을 받았다.

이때 취득한 주특기가 부실기업정리.이철희.장영자사건과 명성사건을
일선에서 겪은게 계기가 됐다.

해외건설 부실업체에 대한 산업합리화조치가 취해지던 지난86년엔
심사1부장을 맡아 전문성을 강화했다.

정행장의 이런 이력은 문민정부가 내세운 금융자율화와 맞아떨어졌고
결국은 은행을 살리는 결과로 나타났다는게 상업은행직원들의 평가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이전까지는 이른바 "마당발"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은행장자리를 독식하다시피 했다.

신정부들어 이런저런 이유로 물러난 박기진제일.김준협서울신탁.김재기
외환.이병선보람은행장등이 그렇다.

이번에 중도하차한 윤순정한일은행장도 같은 범주이다.

이들의 업무적 주특기는 영업.

이들 앞에 따라다닌 "수신왕"이란 칭호가 이를 반증한다.

박기진행장은 83년 수신담당임원을 맡아 제일은행을 4년연속 수신고
1위은행으로 끌어올린걸로 유명하다.

김준협행장과 이병선행장은 10여개의 국내점포장을 거쳐 본점부장을 지내지
않고 곧바로 임원에 올라 "국내영업통시대의 개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었다.

윤순정행장도 7개의 점포장을 거치면서 획득한 수신왕칭호로 고졸출신이란
한계를 극복했다.

수신왕이나 마당발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이들은 왕성한 활동력을 가졌다.

수신부풀리기가 제일이었던 시절엔 이를 토대로 점포장이 됐고 임원이
됐다.

넓은 대인관계를 바탕으로 은행장자리까지 오른건 물론이다.

그러나 이들도 금융환경이 외형보다는 내실로, 무사안일보다는 상호경쟁
으로 변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마감해야 했다.

대신 나름대로의 주특기를 가진 사람들이 이들의 뒤를 이었다.

내로라하는 국제금융전문가인 이철수제일은행장이 대표적이다.

홍콩사무소장 런던지점장 국제부장 국제영업부장등을 지낸 그의 이력부터가
그렇다.

런던지점장시절인 지난81년엔 시중은행중 처음으로 변동금리부채권(FRN)
3천만달러를 발행하는 산파역을 맡기도 했다.

신정부들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종연조흥은행장도 수신이외의
뚜렷한 전공을 가지고 있다.

그는 79년 심사1부장에 오른뒤 4개의 심사관련부서장을 지냈다.

83년엔 영동개발사건의 실무대책반장을 맡아 매끄럽게 뒷수습을 했다.

이런 경력때문에 그가 남산과 명동지점장을 지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직원들이 많을 정도다.

물론 아직도 영업통들이 주류를 이루는건 사실이다.

취임후 첫번째행사로 영업점순방을 택했던 장명선외환은행장이나 입행
11년만에 지점장(상도동)이 된뒤 무려 6개의 점포장을 지낸 손홍균
서울신탁은행장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취임자체가 상당부분 "과거로의 회귀"였다는 점에서 예외로
칠만 하다.

은행도 기업인만큼 기본은 영업이다.

그래서 수신증대에 일가견을 가진 사람들이 빛을 발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막무가내식 마당발은 더이상 통용되지 않게 됐다.

국제화와 자율경영시대에 나름대로의 안목을 가진 사람이나 조직장악력과
기획력이 돋보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제1의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지연과 학연을 뛰어넘는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까지도 관료와 한은출신인지가 주요 기준이 되고 있는 국책
은행장이나 지방은행장은 예외로 치고 말이다.

윤순정행장의 뒤를 이을 신임 한일은행장이 이런 시류와 맞아떨어질지
궁금해지는 시기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