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간의 핵협상이 1년반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타결됐다.

미국측은 협상타결로 북한을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틀안에 묶어둘수
있게 됐으며 오는 11월의 중간선거에 앞서 클린턴행정부의 골치아픈
외교현안 하나를 해결한 셈이다.

북한측으로서는 모든것을 다 얻었다.

외교관계수립의 전단계인 연락사무소 교환설치를 통해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경수로와 대체 에너지를 제공받게 되는
등 경제위기에서 탈출할수 있는 한보따리의 실익을 챙기게 됐다.

지난해 3월 NPT탈퇴선언 이후 존재조차 불투명한 핵카드 한장으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움켜쥐게 된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각자의 의도했던 목적을 모두 달성한 반면 협상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한국은 엄청나게 무거운 짐만 지게 된 꼴이다.

한반도에서 당장의 핵전쟁위기가 걷혀진 대가로 한국은 국제 컨소시엄이
북한에 지원할 경수로건설비 40억달러및 에너지지원비 20억달러등 총60억
달러중 80%를 내놓아야 할 입장이다.

이는 국민 1인당 9만원씩을 부담해야 하는 엄청난 액수이다. 그것도
북한의 과거핵투명성은 당장 보장받지도 못한채 말이다.

북.미협상 결과에 대해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측은 환영일색이고 정부
여당 역시 서둘러 국민설득작업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북.미협상 기본합의문이 오는 21일 공식 조인되는대로 경수로
지원을 위한 국제 컨소시엄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수 있도록
미국과 협의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18일에는 통일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구체적 지원계획을 논의했는가 하면
기업인의 방북을 허용하고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지 않기로 하는 등
대북한 정책을 재검토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얼핏 보기에 일사불란하기 까지한 이같은 정부의 행동은 그간 핵외교
에서 보여온 부처간 혼선과 불협화음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을
어리둥절케 한다.

이러한 조급성은 혹시 "끌려만 다니다가 돈만 내게 됐다"는 여론의 호된
질책을 희석시키기 위한 "오버액션"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정부가 그간의 실패를 호도하려다 또 다시 더 큰 우를 범하지
않을까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다.

북.미협상이 끝남에 따라 북한도 미국도 이제 한국의 눈치를 봐야 할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서두를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는 북한이 주도권을 쥐고 흔들었다면 이제는 한국이 새로운
협상무대의 전면에 나설 차례다.

경수로지원문제는 그 협상결과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