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는 연극에 대한 논란으로 유난히 시끄러웠던 올 여름 연극가에 현대인의
대화 단절을 다룬 부조리극을 무대에 올린 당찬 여자가 있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동물원이야기"(에드워드 올비 작)를 공연
하는 극단 로열씨어터의 류근혜(38)씨.

"인간에 대한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의 근원을 묻고 생각하게 하는
연극은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더라도 꼭 보고 싶어하는 몇몇의 관객은 있는
법이거든요"

"동물원 이야기"는 의사교류를 잃은 현대인의 모습을 동물원에 사는 동물에
빗대 표현한 작품.

출판사 사장으로 있는 중류계급 신사 피터와 부랑아 같은 이미지의 제리가
공원에서 만나 서로 통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며 싸우는 내용이 극의 줄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것"이라는 류씨는 이
연극을 통해 고독한지도 모르는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한다.

류씨는 76년 상명여대 미술과에 입학, 77년부터 대학극회에 들어가 연극을
시작했다.

"미술만으로는 표현에 한계를 느껴 연극을 시작했다"는 류씨는 "연출은
극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책임진다는 점이 매력"이라며 배우의 길 대신
연출가로서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밝힌다.

"여자가 연극을 연출하면서 힘든 점은 남자에 비해 체력이 좀 달린다는
것뿐입니다. 오히려 여자이기때문에 단원들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듣고
챙겨주는 세심한 면이 강하다는게 장점이지요"

졸업후 극단 광장에서 조연출로 본격적인 연극인의 길을 걸었던 류씨는
82년 "무덤없는 주검"(사르트르 작)으로 연출가로 데뷔했다.

현재는 극단 로열씨어터의 상임연출가이자 실험극을 주로 올리는 연극
실험실 혜화동1번지의 극장장으로 있으며 볼재연기원에서 연극제작실습에
관한 강의도 맡고 있다.

11월에는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어제와 내일 사이"(강월도 작)라는
작품을 동숭아트센타에서 선보일 예정.

"이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연극하는 선배들은 모두 존경한다"는 류씨는
연극은 철저한 몰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더욱 열정이 깊어지는 것 같다며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