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참된 수련은 거의가 속세와 동떨어진 산속에서 이루어졌다.

황량한 허허벌판이나 사람들이 붐비는 마음과 도시에서 수행을 하는
승려들이 아무리 그 생활이 성빈하고 주거가 검소하다 할지라도 산에서
수행하는 승려들의 경지를 따를수 없었기 때문이다. 산은 곧 수도자를
속세와 결연시켜 주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높고 깊고 수려한 산이 있는 곳에는 승려들의 도장인 사람이 들어설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인간의 생활행상으로
여가 선용요구가 늘어나면서 관광산업의 확산에 따라서 그 역세가 산사에
까지 밀어 닥쳤다. 탈속과 속세를 구보시켜 주던 장벽이 허물어져 버리게
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금년들어 마찬가지 현상이 버어졌다. 명산의
사찰입구에는 호평을 비롯한 위락시설과 온갖 음식점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날이면 날마다 몰려드는 관광객들에 깨어져버린 산사의 정적속에서
종교적 수행이 이루어질수 없음은 물론이다.

거기에 지역관광개발이라는 그럴듯한 구실아래 자연환경은 훼손되고 오랜
풍상속에서 가꾸어져 온 고찬은 한낱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 화석이 되어
가고 있다. 무소유를 이상으로 삼았던 승려들의 도장 주변이 소유의
전쟁터로 변모해 버린 것이다.

이제 어느 누구도 그러한 현상을 나무라거나 알려하지도 않는 사람의
낙조시대를 맞은 것일까.

때마침 중국이 천하제일명찬이라고 장랑해 마지 않던 하남성 등봉현의
소림사에 대단위 위락단지를 조성한다는 소식은 한국의 전철을 떠올리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돈을 벌어들이는 일이라면 어떤 잘못도 마다하지
않는 천민자본주의의 길로 가는 투영같기만 하다.

소림사가 위치한 산과 더불어 중국4대명산들인 안휘성의 황산과 산동성의
태산의 관광개발선례가 있기는 하다. 황산 허리를 잘라 호텔을 세우고
태산 정상에 오르는 케이블카를 놓은 일이다.

또한 장백산을 백두산으로 착각한 나머지 수없이 찾는 한국인들의
주머니를 노려 정상까지 괴물같은 차도를 만들어 놓은 그들이다.

자연과 문화유산은 한나라의 것만이 아니다. 소림사만 하더라도
동양불교사에서 우뚝한 고찬중의 하나다. 그곳에 호텔을 비롯 온갖
위락시설을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세계인류의 발길을 끌어들이려는 저의에
일말의 실망감이 깃드는 것을 어찌할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