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절단 일행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청과 학교, 그리고 전신국 공장등을
시찰했다. 특히 전신국과 공장에서는 새로운 기계문명을 목격하고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랜드호텔의 대연회장에서 관민 합동의 환영회가 열렸을 때는 이토가
사절단을 대표하여 유창한 영어로 일장의 연설을 늘어놓았다.

일본은 몇해전에 봉건제도를 청산하고, 자본주의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했으니, 선진 구미의 여러분들께서 많은 성원을
아끼지 말아달라는 것과 당장 목전의 문제는 불평등하게 체결된 미일
수호통상조약의 개정이니, 그점도 양해하여 지원해 달라는 그런 요지였다.

너무나 유창한 그의 영어 말솜씨에 장내가 떠나갈 듯한 박수가 터졌다.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일행은 시카고를 거쳐 워싱턴으로 갔다. 처음으로
기차라는 것을 타고 로키 산맥을 넘어 미국 대륙을 횡단하면서 그들은
비로소 문명의 위력을 실감하는 느낌이었다.

워싱턴에 도착한 며칠뒤 사절단은 그랜드 대통령을 예방하기위해 백악관
을 방문했는데, 흰 대리석으로 된 우아하고 장엄한 건물을 보고 모두 눈이
휘둥그래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건물 안의 복도 여기저기에 안치되어 있는 인물 조각을 그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흉상이었다.

"이거 정말 괴상하군요"

"글쎄 말이오. 꼭 효수같잖아요"

"아이 끔찍해. 왜 하필 사람의 머리만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까. 무슨
큰 죄인들인 모양인데."

"그런 것 같구려. 대단한 역적들인 것 같소. 그러니까 이렇게 영구히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거 아니겠소"

주고 받는 말을 듣고서 이토가 싱그레 웃으며 "아니라구요.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조각이오. 이건 보자. 5대 대통령
몬로군요"하고 설명문을 들여다 보며 가르쳐 주었다.

"아, 그래요?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해 효수를 해놓은 셈이군요. 허허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모두 어이가 없는 웃음들을 웃었다.

일본에서는 불상을 비롯해서 모든 인물상이 좌상아니면 입상으로 전신을
조각한 것이어서, 이렇게 가슴 위로만 잘라 만든 것은 처음 보는 터이니,
그들의 눈에는 마치 효수를 흉내낸것 같아 괴이하게 비칠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