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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5월 19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 제1호로 탄생한 대우경제연구소가
열돌을 맞았다. 이는 단순히 한 연구소가 열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내 민간경제연구소가 유년기의 옷을 벗는다는
상징성이 있다. 한국의 민간경제연구소는 과연 싱크탱크(Think Tank)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시리즈로 엮어본다.
< 편 집 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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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의 민간경제연구소도 많이
변했다. 우선 수가 크게 늘었다. 현재 민간경제연구소라는 "간판"을 붙일
만한 연구소는 모두 20여개. 사설연구소나 반관반민 연구소등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민간연 하면 크게 나눠 세종류다. 대기업 그룹을 모태로 소위 종합경제
연구소를 표방하고 있는게 그 하나다. 80년대 중반 증시호황이란 높새바람을
타고 출범한 대우 럭키금성 삼성 현대경제사회연구원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대부분 증권관련 연구에서 시작해 지금은 거시경제 금융 산업등으로
연구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또 한갈래는 순수 증권사 계열 연구소. 고려 대신 동서 쌍용 제일 한신
경제연구소등이 있다. 이밖에 90년대 들어 속속 생겨난 국은 장은 한국주택
한일종합연등 은행부설 연구소들도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국내 연구소 숫자의 증가뿐아니라 연구소 하나하나의 외형성장도 눈부시다.
매출액과 연구원수만 보면 특히 그렇다. 설립당시보다 덩치가 4-5배이상
커졌다. 대우연의 매출액은 지난해 50억원을 기록했다.

설립첫해 3억8천만원에 비하면 무려 16배가 불어난 셈이다. 삼성연과
럭키금성연의 작년 매출액도 출범당시 보다 4배정도 증가해 각각 67억원과
42억원에 달하고 있다.

인원도 평균 4곱절씩 늘어났다. 지난4월말 현재 삼성연(1백40명) 대우연
(1백12명) 럭키금성연(85명) 현대연(67명)등의 인원현황을 보면 그런대로
뼈대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 위상 역시 예전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높아졌다. 특히 대기업그룹
산하 연구소의 경우 소장이 그룹 사장단회의 핵심멤버가 된것은 오래전이다.
수시로 최고경영자에게 경기동향을 보고 하는가 하면 신규사업투자 타당성
등을 조언한다.

작년 8월 금융실명제 전격실시가 발표되던 날 D그룹회장이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이 산하 연구소장이었다는 얘기는 이들 민간경제연구소의 그룹내 위치가
어느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물론 이같은 외형규모는 일본의 유수한 연구소들과 비교하면 턱도 없는
수준이다. 일노무라 종합연구소(NRI)의 경우 시스템엔지니어와 지원인력을
제외한 순수연구인원만 5백여명, 작년 매출액은 우리 돈으로 9천4백억원에
달한다.

몸집만보면 거인과 난쟁이의 차이 이상이다. 그러나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나 민간경제연구소의 역사를 감안하면 이건 문제가 안된다.

포인트는 싱크탱크로서의 내실이다. 내실면에선 거개가 의문부호를 찍고
있다. 그릇에 비해 그안에 담긴 알맹이는 형편없지 않느냐는 얘기다.

싱크탱크의 필수요건이라는 "독립성 정책지향성 미래지향성"(마키노
노부루 일미쓰비시총연회장)등 세가지 잣대를 대보면 물음표는 더욱 선명해
진다.

우선 재정자립도를 말하는 독립성-.

국내에선 내로라하는 종합연구소들 조차 홀로 서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거의가 소속그룹에 손을 벌릴지 않으면 안될만큼 자체수익기반이 취약하다.

그룹외 수입비중이 너무 적은건 당연하다. 재정자립도가 그중 낫다고 하는
삼성연은 수입의 80%를 그룹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대우연 럭키금성연
현대연등의 경우는 이 비율이 90%를 넘는다.

일본의 노무라종합연구소(NRI) 작년 총매출액중 모그룹에 대한 매출비중이
42%에 그치고 있는 점과 극히 대조적이다. 그러니까 독립성 면에선 일단
낙제점이다.

정책지향성은 어떤가.

이부문에서도 그리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연구건수중 적게는
80%에서 많게는 99%까지가 그룹관계사로부터의 의뢰과제다.

정부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줄수 있는 연구결과는 거의 "전무하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있어봤자 연구소장이 신문에 글쓰고 세미나에 나서는등
다분히 "입놀림"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다보니 미래지향성도 기대수준 이하다.

몇몇 연구소에서 "2천년대 산업구조 분석"등 장기전망을 내놓고는 있지만
"아직은"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장기전망과 심층적 분석을 통한 미래예측
연구는 "불모지"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때그때의 이슈에 따라 "유행상품"을 출시하는데 더욱 익숙해
있다.

요컨대 한국의 민간경제연구소는 몸집은 커졌지만 안이 허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건 뒤집어 보면 그만큼 뭔가 채워넣을 공간이 넓다는 얘기도
된다.

얼추 10년을 넘겨가는 국내 민간경제연구소들의 과제가 무엇인가의 해답도
바로 여기서 찾을수 있을 것같다.

< 차병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