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일 오전 국민생명 자산운용담당 김영세이사실. 김이사등 5명이 둘러
앉아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회사가 92년엔 적자를 냈지만 작년상반기에는 흑자로 돌아섰다. 오너의
자금여력도 충분하다고 본다"(민경종ALM팀 과장) "그때 적자폭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적자요인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대보증인에
대해서도 재조사해야한다"(한태흥자산운용부장) "계열사의 영업실적이 좋아
지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지 않는가"(이정조법인영업부장)

제약회사 K사가 요청한 10억원짜리 신용대출건에 대한 여신심사위원회장면
이다.

기업심사파트와 법인영업관계자의 의견을 모두 들어본 다음 김이사는
참석자에게 대출여부를 결정하는 의사를 물었다. 결과는 모두 찬성. 10억원
의 신용대출이 그날 오후 집행됐다.

국민생명의 대출심사업무는 타금융기관과는 다르다. 첫째 철저한 책임자
위주의 의사결정시스템을 택하고 있다. 여기선 최고경영자의 의사도 철저
하게 배제된다. 둘째 여신심사위원회의 의사결정방식으로 참석자 만장
일치제를 채택하고 있다는점. 한명의 실무자라도 끝까지 반대를 하면 대출
은 불가다. 셋째 대출요청이 있으면 심사위원회를 즉각 소집해 가부를 결정
해 그사실을 고객에게 통보한다. 신속하게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국민생명의 심사업무는 지난해 8월 부도설에 휘말렸던 R사에
35억원의 신용대출을 결정한 대목에서 그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당시 은행
을 비롯해 모든 거래금융기관들은 R사로부터 대출을 회수중이었다. 그러나
국민생명은 담보도 없이 신용으로 35억원이나 대출해주는 과감성을 보였다.

"오너인 경영자가 무상증여형식으로 1백억원의 개인재산을 회사에 내놓았던
점이 대출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민과장은 말했다. 최고
경영자의 의지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경영여건 변화도 감안됐다. 주력상품
이 수입품의 범람으로 고전했으나 정부가 해당품목에 관세를 부과하고
때마침 엔고현상이 일어나 기업의 실적이 급진전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R사는 그뒤 흑자로 돌아섰다. 대출금을 착실히 갚는것은 물론
"은혜"를 잊지않고 국민생명의 단골고객이 됐다.

국민생명의 리스크관리는 무엇보다 기업의 재무제표나 손익계산서중심의
"형식"심사에서 탈피해 현금흐름중심의 "내용"심사를 한다는 점이 다르다.
예컨대 총차입금에서 모든 예금을 뺀 순차입금의 변동을 중시하는 새로운
심사기법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또 재무제표에 나타난 수치보다는 그이면에 있는 상황을 더 의미있게
평가한다. 보유부동산을 매각하고 있다든지 공장을 이전하거나 확장하는지
를 주의깊게 살핀다. 경영자의 자세나 기업의 역사도 주요 변수의 하나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일수록 안정성이 높다는게 심사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속"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장중심의 리스크관리는 이회사 출범이후 4년반동안 부실채권이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보험업계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냈다.

비단 대출뿐만 아니라 주식 채권투자분야에도 부실이 전혀 없다. 얼마전
상장사인 영원통신과 한국강관이 부도를 냈다. 하지만 국민생명은 이회사
에서 이상징후가 엿보이자 가지고 있던 주식(각각 1만5천주와 3만주)을
즉각 처분, 엄청난 손실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숫자보다 현장을 우선시하는 기업심사분석기법은 계약자가 낸 보험료로
구성된 보험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면서 영업경쟁력을 높이는 밑바탕을
일궈냈다.

리스크관리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신용대출도 주저하지 않는다. 작년말
현재 전체기업대출금 8백97억원의 91.2%에 달하는 8백18억원이 담보없는
신용이었다. 개인대출도 전체의 31.8%인 84억3천만원이 신용으로 나갔다.

신용대출은 경쟁력을 의미한다. 담보설정에 따른 감정비용 근저당설정비용
이 안들어 사실상 0.5~1.5%포인트의 금리를 낮춰 줄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생명은 80년대후반에 설립된 신설생보사로 생보업계에서 중위권에
머물고 있다. 자산도 5천억원대로 대형사와는 비교가 안된다. 그러나 자산
운용면에선 "업계최고"의 타이틀을 독점하고 있다. 기업의 신용도등을
감안해 대출한도를 설정해주고 한도내에서 추가서류없이 일시자금이나
은행의 당좌차월 결제자금을 지원하는 여신한도거래제도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허위대는 작지만 속살이 알찬 작은 거인. 그래서 "선두주자"
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시비삼는 사람이 없다.

<송재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