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이 서울 삼청동 극동문제연구소 앞 정원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이 서울 삼청동 극동문제연구소 앞 정원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보수 꼴통이 어떻게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이 일했느냐’고들 많이 그러죠. 그런데 말이죠. 제 연구실을 보세요. 이곳 책들을 보면 그 생각이 싹 가실 겁니다. 허리 잘린 나라에서 평생 남북관계를 연구하고, 통일부 장관까지 했는데 색깔론이 말이 됩니까. 이 분야는 보수니 진보니 그런 잣대로 해석할 수 없어요.”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85)는 21일 서울 삼청동 연구실에서 이같이 말하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강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이념을 떠나 유연한 실리주의로 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의 말대로 연구실 서가에는 레닌 전집과 마오쩌둥 전집, 북한 헌법 등 이른바 ‘빨간 책’들이 가득했다. 그는 “한창 서슬이 시퍼렇던 유신체제 땐 조지프 슘페터 책만 갖고 있어도 경찰에 끌려갔다”며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정색했다. “지금 이런 얘기 들으면 정말 웃기죠. 그런데 이 웃기는 얘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아직도 대북정책에 대해 이념적 잣대로 접근하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그렇게 인터뷰는 시작됐다.

▷현재 남북관계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분단 이후 최악입니다. 이젠 남북한끼리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나버렸어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니까요.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국제사회를 설득하기가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그나마 냉전체제 땐 미국과 옛 소련만 신경쓰면 됐는데,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아세안, 아프리카까지 다 챙겨야 합니다. 사실 한국 정부 차원에서 어떤 카드를 꺼내 들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우리로선 비대칭적 대결이 돼 버렸거든요. 북한은 핵이 있지만, 우린 핵이 없으니까요.”

▷북한 김정은 정권이 강경하게 나오는 게 주된 원인입니까.

“당연하죠.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까지만 해도 북한이 이렇게 막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때만 해도 북한이 주변 눈치를 좀 봐 가면서 했어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병진노선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핵 개발과 경제 발전을 같이 하겠다는 겁니다.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걸 북한도 알아요. 당장 중국도 경제 제재를 하려고 하는 마당이니까요. 하지만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을 체제 유지의 유일한 수단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설득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한국이 왜 자체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다고 보십니까.

“한반도 문제는 더 이상 남북한만의 것이 아니니까요. 지금 한반도와 얽혀 있는 나라가 몇 개국인지 생각해 봤어요? 미국과 중국, 일본만이 아닙니다. 유엔 차원에서 내놓은 대북제재안을 떠올려 봐요. 유엔 회원국 수가 193개국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선 내부에서조차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한국보다 해외에서 분단 리스크를 더 우려하고 있죠.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선 통일부와 외교부, 국방부의 협력이 매우 중요한데 그 세 부처 간 협력도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국내에서도 통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꽤 높은 편입니다.

“이게 정말 우려스러운 부분입니다. 1998년 국립통일원이 통일부로 격상되고, 제가 장관으로 부임했을 당시 직원들에게 ‘난 대북정책을 위해 온 게 아니라 대내 정책을 위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내부 결속부터 돼야 우리가 북측에 무엇을 요구할지, 통일을 위한 방안으로 무엇을 내놓을지 제대로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세대별로 전부 다 여론이 쪼개져 있어요. 전쟁을 겪은 70세 이상 노년층은 북한이라 하면 그냥 ‘죽일 놈들’이라고 봐요. 중·장년층은 ‘부모를 힘들게 한 부담스러운 존재’라 생각하고, 30대 이하 세대들은 북한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어요. 분단된 국가라는 점 하나 때문에 한국이 얼마나 지구촌에서 저평가돼 있는지 모른 채 말이죠.”

▷잠시 화제를 돌리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습니까.

[월요인터뷰]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대북정책, 유연한 실리주의로 가야…보수니 진보니 쓸데 없어"
“1980~1990년대 김 전 대통령이 신촌 대학가에서 대학생들에게 통일 관련 강의를 했어요. 거기 주로 오는 학생들은 이른바 NL(민족해방)파, PD(민중민주)파라 불린 운동권이었죠. 그런데 1990년대 초,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쪽에서 강의를 부탁했어요. ‘제대로 강의해 주실 분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그래서 서너 차례 거기 가서 강의를 했어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했죠. 그 후 김 전 대통령이 밥을 같이 먹자고 하더라고요.”

▷초대 통일부 장관을 맡았을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북한에 대한 대화와 억지력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도 중앙정보부 출신인 제가 초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됐다는 소식에 매우 놀랐어요. 사실 그 점을 역이용해 일부러 유화책부터 먼저 꺼내 들었죠. 쌀 무상지원이나 금강산 관광, 남북한 고위급 회담 등이 그런 것이었어요. 대신 북한이 멋대로 나온다 싶으면 외교부, 국방부, 국가정보원과 함께 힘을 모아서 억지력 모색에 나섰어요. 그땐 관련 부처들끼리 협력이 잘 되는 분위기였어요. 당시 국정원 내 북한 관련 직원들은 내가 키운 후배였고, 외교부와 국방부에도 친구들이 많아서 서로 뭉치기 쉬웠어요.”

▷관련 부처 협치가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것 역시 그 점입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이 모두 힘을 모아야 해요. 같은 주제를 놓고 뿔뿔이 흩어지면 곤란해요. 아마 문 대통령도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이 클 겁니다. 누굴 앉혀야 할지, 어떻게 정책을 펼칠지 머리가 복잡할 겁니다. 왜냐하면 이 분야는 다른 부처들과 달라서 아주 유연한 실리주의로 가야 해요. 그런 기조로 움직이지 못하면 어느 한 곳이 부러져 버려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장 실수한 게 북한에 너무 독선적으로 나간 것이었는데, 문 대통령은 이 전철을 밟으면 안 됩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어떤 분위기였습니까.

“대북 관련 정책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업무마비 상태였다고 보면 됩니다. 장관들이 뭘 건의해도 듣지 않았어요. 개성공단 폐쇄 과정만 봐도 실무진에선 그러면 안 된다고 분명 말렸을 겁니다. 그런데 끝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치워 버렸잖아요. 그 안에 있던 중소기업들은 생각도 안 하고, 북한엔 배신감을 안겨서 한국에 대한 신뢰를 더 떨어뜨리게 했어요. 강경책이란 건 말이죠, 부러지기 직전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를 부러뜨려 버리는 게 강경이 아니거든요. 박 전 대통령은 이 점을 착각한 것이죠.”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까.

“정의용 신임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사실 잘 몰라요. 그래도 문 대통령이 좀 실력 있는 사람을 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 대통령 역시 실용주의를 매우 중시하는 사람 같거든요. 측근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통일부와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선은 아직이죠. 이들 부처 인사에서 제일 중요한 건 북한과 조금이라도 접촉해 본 사람을 데려 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냥 책으로 북한을 배운 사람이나, 민간 교류 몇 번 해 봤다는 이유로 북한 전문가라 자처하는 사람을 쓰면 정말 큰일납니다. 북한과 프로 대 프로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와야 해요. 아주 유연한 실리주의를 갖춘 진정한 프로를 골라야 합니다. 아마추어를 뽑았다간 북한과 국제사회의 비웃음만 살 겁니다."

■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은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직접 영입한 인물이다. 1998년 통일부가 종전 국립통일원에서 중앙부처로 격상될 때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영어와 일어, 러시아어에 능통하다.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제일고 졸업 후 6·25전쟁이 터지자 가족들과 함께 남한으로 피란한 뒤 국군으로 3년간 전쟁을 치렀다. 이후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뒤 해병대에 입대해 군 훈련과 대북방송, 군사전략 등을 공부하다가 1971년 중앙정보부에 차출됐다.

80대 중반 고령에도 불구하고 국내와 미국, 일본, 러시아 등 각지에서 왕성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를 맡아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1932년 평양 출생 △평양제일고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아시아지역사회연구학 석사 △경희대 정치학 박사 △중앙정보부 해외정보국장·북한정보국장, 심리전국장·북한국장 △1981~1993년 평화통일자문회의 이념제도분과위원장 △1979~1998년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이사장 △1998~1999년 초대 통일부 장관 △2013년~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통일·북한 분야) △2015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