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국내 주식에 이어 채권까지 사들이는 것은 원화 자산가치 상승에 대한 확신이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경기지표와 기업실적이 연이어 ‘서프라이즈(기대 이상)’ 수준의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어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대로 국내 외환파생상품시장에서 달러에 붙는 ‘웃돈’(스와프포인트 역전폭)이 커진 것도 원화 자산 매수를 자극한 요인으로 꼽힌다.
[외국인 '바이 코리아'] "한국 경제 '서프라이즈' 시작"…원화 자산 사들이는 외국인
◆외국인, 이달 주식 1조원 순매수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유가증권 및 코스닥시장에서 약 1조1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외국인 주식 보유잔액은 지난 1월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이날 기준으로 530조원(추정)에 육박하면서 4개월 연속 신기록을 다시 쓸 전망이다. 지난달 말 보유액은 528조8000억원으로 한국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32.4%를 차지했다.

외국인의 국내 자산 매입은 지난해 하반기 가파른 원·달러 환율 상승세(원화가치 하락)가 올 들어 크게 꺾이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보호무역 강화가 신흥국 경기에 타격을 줄 것이란 당초 우려가 완화됐기 때문이다. 환율 하락은 외국인의 투자차익으로 반영된다.

예상을 뛰어넘는 ‘서프라이즈’ 수준의 경기지표와 기업실적은 원화 강세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0.9% 증가했다. 수출도 두 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소비심리도 빠르게 회복 중이라는 평가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우려했던 것처럼 외국인이 이탈하기는커녕 올 들어 주식과 채권을 모두 사들이고 있다”며 “한국 경기 호전에 대한 신뢰와 환율 안정 기대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실적 개선 자신감

국내 기업은 올해도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2017년 국내 상장사 주당 순이익 추정치는 약 1년 전 첫 집계 때보다 23.9%나 증가했다. 2015년과 2016년 같은 기간 추정치가 20.3%와 16.7%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국내 상장기업들의 순이익은 사상 처음 1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3년간 매출이 감소하는 디플레이션(물가하락) 환경을 극복하고 인플레이션(물가상승) 환경으로의 변화에 진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 추정치 상승을 동반하는 경기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며 “시장의 기대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당분간 경기회복과 어닝 서프라이즈(깜짝실적)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갈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수요 회복도 국내 수출 대기업 실적 전망에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이날 공개한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글로벌 수요회복이 한국 가전 수출업체의 수익 증가를 가져다주고 있다”며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글로벌 물가가 탄력을 받고 한국의 4월 무역흑자도 전달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원화 투자 ‘유리한 환경’

전문가들은 원화 자산 투자에 유리한 외환파생상품시장 환경도 외국인의 유입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선물환율에서 현물환율을 뺀 수치인 스와프포인트의 역전폭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확대되고 있어서다. 이 역전폭은 달러에 대한 파생상품시장 수요를 반영한다. 달러 보유자 관점에선 역전폭이 클수록 원화 자산에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아지는 구조다.

스와프포인트(1년 만기 기준)는 지난해 8월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계속 내려 지난 27일 -7원까지 떨어졌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스와프포인트 역전폭 확대가 외국인의 국내 채권 투자를 유인하고 있다”며 “미국이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에 접어든 반면 한국은 10개월째 금리를 동결하면서 양국 간 시장 금리가 역전된 데 따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태호/하헌형/김진성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