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원전 없이 4차 산업혁명 한다는 대선후보들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은 천차만별이다. 고정표를 다지고 부동표를 끌어들이는 데 정책의 차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분야의 공약이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한목소리로 의견 일치를 본 분야도 있다. 에너지와 4차 산업혁명 정책이 그런 경우다.

에너지 분야에서 후보들은 탈(脫)원전을 주장한다. 신규 원전 계획 백지화는 물론이다. 노후 원전은 수명 연장 없이 폐쇄해야 하며 건설 중인 원전과 가동 중인 원전마저 모두 폐쇄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보수 후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4차 산업혁명 정책은 더 판박이다. 세계 경쟁에서 앞서가겠다는 데 이견이 없다.

탈원전은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관심사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모순이라는 점이다. 탈원전과 4차 산업혁명이 왜 모순일 수밖에 없는가. 얼마 전이다. 국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원전 없이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한가”를 물었다. 주 장관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4차 산업혁명은 기본적으로 에너지 수요를 늘리는 요인이다. 물론 신재생에너지, 전력저장시스템(ESS), 스마트그리드 등 신기술로 획기적인 에너지 절감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갖춰진 기술이 아니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물인터넷(IoT)이 확산되면 데이터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데이터가 늘어나면 그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데이터센터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전력 소비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전 세계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소비된 전력이 6840억㎾h나 된다. 이를 한 나라의 전력 소비량이라고 한다면 세계 6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금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늘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와이파이, 무선랜 등 무선 네트워크 인프라의 전 세계 전력 소모량이 데이터센터 소모량의 10배나 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히 ‘전기 먹는 하마’인 셈이다.

문제는 원전 없이 이 같은 전력 수요를 커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긴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은 나라는 ‘2030년 100% 탈원전, 100% 신재생에너지’라는 목표를 세워놓았다. 하지만 이들 나라와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전력의 절반이 수력에서 나오는 나라다. 노르웨이는 90%가 넘는다. 나머지의 상당 부분도 임업에서 나오는 바이오매스가 채운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5%인 나라다. 그런데도 대선후보들은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 이상으로 가져가겠다고 한다. 40%를 말하는 후보도 있다. 가능한 얘기일까.

태양광,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는 막대한 투자가 들어갈 뿐 아니라 효율은 낮고 생산 비용이 많이 먹힌다. 전기료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 일부 후보는 기후에너지세 같은 목적세를 신설해 재원을 마련하겠다지만 당연히 무리다. 게다가 전력 생산이 간헐적이어서 지금 기술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10%를 넘으면 전력망의 안정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백업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대선후보들의 탈원전 주장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국가대계를 구상하는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에너지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에게 원전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이 맞다. 기후변화협약에 대처하는 데도 그 이상의 선택은 없다.

일본은 2011년 그 참변을 당하고도 원전을 재가동했고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22%로 높이기로 했다. 영국의 원전 비중 목표가 2050년 86%라면 믿어지는가. 이 나라 국민들이 우리보다 안전에 둔감해서일까.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일관적이다. 원전을 기저전원으로 가져가되 안전을 대폭 강화하자는 것이다. 방법은 전문가들의 몫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전문성은 무시한 채 ‘표심’만을 좇아 무책임한 탈원전을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원전 없는 4차 산업혁명은 불가능하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