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문제로 금융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1일 작년 가계부채가 1344조3000억원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뒤 금융감독원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높은 제2금융권 92개사를 현장점검하고 있다. 또 금융권 가계대출 통계를 매주 집계해 동향을 파악하는 비상대응 체제도 갖추기로 했다. 마치 새로운 위기가 나타난 것처럼 요란을 떤 셈인데, 급기야 한은이 잘못된 통계를 발표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한은은 9일 오전 저축은행의 1월 가계대출 증가액이 9775억원이라고 발표했다가 오후 4시에 그보다 훨씬 줄어든 5083억원이라고 정정자료를 냈다. 저축은행중앙회가 잘못된 자료를 전달했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가계부채발 위기를 더 부풀리려는 무의식적 동기라도 작용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때맞춰 공개된 국제결제은행(BIS) 통계도 이런 분위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작년 3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6%로 1년 전보다 4.6%포인트 상승했다. 증가폭은 세계 43개국 중 세 번째로 컸고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8위였다.

가계부채가 급증한 까닭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조이자 풍선효과로 제2금융권으로 옮겨간 탓이 클 것이다. 이자가 높아지고 또 기존 은행권 대출도 원리금을 갚아야 하니 더 많이 빌리게 된 것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련 금융권 리스크를 관리하겠다고 나설수록 가계부채 총량은 줄지 않고 오히려 한계 가계만 더 궁지로 내몰린다. 악성 가계부채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가계부채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통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같은 가계부채라도 금융자산이 금융부채의 2배를 넘는 자산가들이 빌린 돈과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서민들의 부채가 같을 수 없다.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임대업자가 임대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빌린 경우, 자영업자 등의 영리목적 가계대출 등은 모두 성격이 다르다. 이런 고려 없이 ‘특단의 대책’을 세울수록 풍선효과만 더 커진다. 통계 오독은 잘못된 대책을 내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