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열린 제89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마하셜라 알리(남우조연상·왼쪽부터), 에마 스톤(여우주연상), 비올라 데이비스(여우조연상), 케이시 애플렉(남우주연상)이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열린 제89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마하셜라 알리(남우조연상·왼쪽부터), 에마 스톤(여우주연상), 비올라 데이비스(여우조연상), 케이시 애플렉(남우주연상)이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제89회 아카데미영화제 시상식] 흑인 감독 '문라이트' 작품상…'라라랜드' 6관왕 영예
흑인 감독 배리 젱킨스의 ‘문라이트’가 강력한 경쟁작 ‘라라랜드’를 제치고 작품상을 비롯 아카데미 3관왕에 올랐다. 남녀 조연상도 흑인 배우가 차지하는 등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잔치’라는 비난에서 벗어났다. 14개 부문 후보에 오른 뮤지컬영화 ‘라라랜드’는 감독상 등 6관왕을 차지했다.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9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문라이트’는 작품상과 남우조연상(마하셜라 알리), 각색상 등 세 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흑인 감독의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스티브 매퀸 감독의 ‘노예 12년’(2014)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영화는 미국 마이애미 빈민가에 사는 흑인 소년 샤이론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약 20년간의 성장 과정을 그렸다. 마약중독에 빠져 아들을 냉대하는 엄마, 아버지처럼 따스하게 돌봐주는 마약상 후안(마하셜라 알리 분) 사이를 오가며 동성애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비루한 현주소를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배우 브래드 피트는 ‘노예 12년’에 이어 이 영화까지 공동 제작해 두 차례나 작품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문라이트’는 제74회 골든글로브 드라마부문 최우수작품상 등 세계 각종 영화제와 협회가 주는 상을 165개나 받아 ‘라라랜드’의 강력한 경쟁작으로 예상됐다.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
‘라라랜드’는 감독상(다미엔 샤젤)과 여우주연상(에마 스톤)을 비롯해 촬영, 미술, 주제가, 음악상 등을 안았다. 특히 두 개의 음악상을 싹쓸이해 최고 뮤지컬 영화임을 입증했다. 주제가상은 라이언 고슬링과 에마 스톤이 함께 부른 ‘시티 오브 스타즈’에 돌아갔다. 만 32세로 아카데미 사상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가 된 다미엔 샤젤 감독은 “라라랜드는 사랑에 관한 영화”라며 “영화를 만들면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에마 스톤은 “나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며 “이 상은 그 여정을 계속 가도록 이끌어주는 상징”이라고 말했다. ‘라라랜드’는 고단한 현실에서 각자 꿈을 찾아가는 두 남녀의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그려냈다.

남우주연상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가족을 잃은 상처로 방황하는 남성 역을 빼어나게 소화한 케이시 애플렉이 차지했다. 여우조연상은 ‘펜스’의 흑인배우 비올라 데이비스에게 돌아갔다.

‘문라이트’의 알리를 포함해 두 개의 남녀 조연상을 모두 흑인배우가 차지한 것은 아카데미 사상 처음이다. 무슬림 배우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도 알리가 처음이다. 알리는 2007년 포레스트 휘태커가 ‘라스트 킹’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래 흑인 남자배우로는 10년 만에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비올라 데이비스는 2009년 ‘다우트’로 여우조연상 후보, 2012년 ‘헬프’로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된 이래 세 번째 도전 끝에 수상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작품상을 잘못 호명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작품상 발표자로 나선 원로배우 페이 더너웨이와 워런 비티가 수상작으로 ‘라라랜드’를 호명했고 라라랜드 제작진은 일제히 무대로 올라와 수상 소감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사회자 지미 키멀이 황급히 나서 수상작이 적힌 봉투를 보여주며 ‘문라이트’라고 정정, 라라랜드 제작진이 트로피를 문라이트 제작진에게 건네주는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적힌 봉투가 잘못 전달된 데서 비롯된 소동이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