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불황으로 일감이 떨어져 올 하반기부터 군산조선소 가동을 중단하기로 한 현대중공업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현대중공업은 향후 경기가 회복되면 군산조선소를 재가동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역 여론이 거세게 반발하는 데다 정치권까지 간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군산조선소로 달려가 가동 중단은 안 된다며 압박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구조조정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기업은 그냥 앉아서 죽을 판이다.

정치인들의 요구가 일말의 현실성이라도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군산조선소에 최소 물량을 배정하라며 현대중공업을 다그친다. ‘수주절벽’이 지속되면 일부 도크의 가동 중단이 불가피하기는 울산조선소라고 다를 게 없다. 상황이 이런데 울산의 일감을 빼서 군산으로 돌리라는 게 말이 되나. 더구나 수주계약 당시 선주가 건조를 원한 조선소를 정치인이 요구한다고 임의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천정배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한술 더 떠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직접 만나는 트럼프식 담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주주를 협박하면 문제가 금방 해결될 것이라는 발상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국가 지원으로 해결하라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도, 정부가 군함 등 공공용선을 조기 발주하라는 이재명 성남시장도, 군산조선소의 구조나 용도 등을 도외시한 포퓰리즘적 압박이기는 마찬가지다. 기업 경영을 대신 책임져 줄 것도 아닌 정치인들이 도대체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기업 구조조정 현장을 들락거리면서 잘 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지난해 여야 지도부가 잇달아 거제 대우조선소를 찾아가 노조를 들쑤셔 놓은 것만 해도 그렇다. 그런 방법은 구조조정을 방해할 뿐이다. 외환위기도 정치권이 기아자동차 구조조정에 끼어들면서 촉발된 측면이 크다. 경제논리로 풀어야 할 기업 구조조정에 정치논리가 개입하면 결과는 뻔하다. 기업도 죽고 경제도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