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이후 새누리당은 지리멸렬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지지도가 훌쩍 올라갔다. DJ 시절에도 못 이룬 지지율 40%(갤럽 조사)를 터치했을 정도다. 실질적인 제1당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내놓은 ‘촛불시민혁명 12대 입법·정책과제’는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포퓰리즘 일색에다 시장경제 원리마저 부인하고 있다. 정당의 지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의심스럽다.

촛불시위가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졌지만 국정을 정상궤도로 복귀시키는 것은 촛불이 아니라 전적으로 국회와 정치의 책임이다. 그런 점에서 실질적인 제1당으로서 민주당은 더없이 엄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고 유력 대선주자도 여럿이다. 대립과 갈등의 ‘87체제’ 극복이란 막중한 책무가 있다. 그런데도 만년 야당의 관성에 갇혀 있다. 이런 식이면 설사 집권한다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임정권이 되고 말 것이다.

권력 공백기인 지금은 지난 30년간 켜켜이 쌓인 ‘87체제’ 적폐를 청산할 호기다. 정쟁만 부추기는 제도와 관행을 정비해 누가 정권을 잡든 제대로 일하는 정부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들 과제를 민주당이 앞장서 해결해 낸다면 저절로 ‘책임 있는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

첫째, 과잉 인사청문회의 축소다. 청문회가 후보자의 능력 검증이 아닌 신상털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런 식이면 정권이 바뀌어도 막장 드라마의 공수교대일 뿐이다. 과도한 인사청문회는 거국적인 인재의 등용을 차단하고 취임 이후에도 제대로 업무를 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장관들에게 남길 수 밖에 없다. 둘째, 국회선진화법은 폐지해야 마땅하다. 민주주의 다수결을 부정하고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나라로 만든 주범이 국회선진화법이다. 바로 그 법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개혁과제도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 때문에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은 민주당이 너무도 잘 알 것이다. 셋째, 재정건전화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국가채무의 무분별한 증가는 미래 세대를 약탈하는 범죄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노동개혁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특히 청년 일자리를 위해 지지층인 노동계를 설득하는데 민주당이 적임이다. 독일도 좌파 슈뢰더 정권의 노동개혁이 없었다면 오늘의 번영은 불가능했다. 다섯째, 국회의원 특권 철폐에 앞장서라. 특권과 갑질을 버리라는 게 바로 촛불의 요구가 아닌가. 민주당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의 상당 부분도 여기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여섯째, 무소불위 의원입법을 규제하라. 의사봉만 두드리면 법이 되는 게 아니다. 국회가 입법권을 무기로 권력기구화하면서 국가의 장애물이 된 지 오래다. 프랑스처럼 재정이 수반되는 법안은 의원 발의를 아예 금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끝으로 대북정책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하라. 국민의 안보 의구심을 푸는 것은 민주당이 얼렁뚱땅 넘길 문제가 아니다.

대선은 향후 5년을 가늠하는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최근 민주당 지지율 상승은 여당 궤멸의 반사이익이지 자신이 잘해서 오른 게 아니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집권을 꿈꾼다면 부디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