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8일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직무 관련성이 있는 공직자 등에게 1인당 3만원 이상의 음식 접대가 금지된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식당에 대부분 3만원을 넘는 음식 차림판이 걸려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헌법재판소가 28일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직무 관련성이 있는 공직자 등에게 1인당 3만원 이상의 음식 접대가 금지된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식당에 대부분 3만원을 넘는 음식 차림판이 걸려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공직자의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등을 금지한 이른바 ‘김영란법’이 오는 9월28일 시행을 앞두면서 관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중소기업청 등 정부 부처들은 법제처에 이의 신청을 하기로 했다. 간신히 회복 조짐을 보인 민간 소비가 가라앉으면 한국 경제 전반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추석 대목인데” 업계 울상

김영란법이 합헌으로 결정된 28일, 고가 선물세트를 주로 판매하는 백화점은 일제히 위기의식을 나타냈다. A백화점 대표는 “이번 추석은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이지만 선물을 주고받는 심리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판단”이라며 “선물을 거절하거나 반품하는 사례가 늘 것 같아 물류 시스템을 재정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백화점의 주력 선물세트는 20만~30만원대이기 때문에 5만원 이하의 선물만 가능하도록 허용한 법 조항을 위반한다. 롯데백화점은 실속형 상품 비중을 전년 추석 대비 20% 늘리기로 했고, 갤러리아백화점은 5만원 이하 제품을 전년 대비 47개 더 늘렸다. B백화점 관계자는 “여름철 비수기에 추석 선물세트를 판매하면서 소비 심리를 높이는 것이 백화점의 일반적인 전략”이라며 “성수기인 가을과 겨울의 소비심리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수협중앙회·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공동 분석한 결과 김영란법에 따라 연간 선물 수요는 최대 2조3000억원, 음식점 수요는 최대 4조2000억원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축산농가는 한우 고기 선물 상품의 93%가 10만원을 넘는 만큼 선물 수요만 24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농수산업과 음식업이 받는 타격으로만 전체 고용이 최대 5만9000명 줄어들 것이라는 게 이들의 우려다.
'소비절벽' vs '투명사회'…어디로 튈지 모를 '김영란법 후폭풍'
○“성장 버팀목 내수인데”

농식품부와 해수부, 중소기업청은 법제처에 이의 신청을 하기로 했다. 법제처 입법정책협의회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절차상 김영란법을 수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농식품부는 농축산업계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농축산물 수급대책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하기로 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7%로 3분기 연속 0%대에 그쳤다. 그나마 1분기(0.5%)보다 반등한 데엔 소비의 힘이 컸다. 5월 임시공휴일 지정,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으로 간신히 끌어올린 소비심리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정부의 고민이다. 성장의 또 다른 버팀목인 수출·투자는 기업 구조조정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2004년 기업이 건당 5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지출하면 실명을 밝히도록 한 ‘접대비 실명제’가 도입됐을 때도 내수가 위축됐다. 그해 접대비가 전년보다 5% 감소하면서 1분기 민간 소비가 0.9%(전년 동기 대비) 줄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연간 11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선물 수요가 최대 0.86% 감소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보는 등 전망이 엇갈렸다.

○“투명성은 장기 성장에 보탬”

김영란법이 국내 경제의 효율성을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도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국가별 청렴도를 분석해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지난해 한국은 100점 만점에 56점에 불과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7점까지만 끌어올려도 0.65%포인트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2.7%에 더해 보면 3%대 성장도 충분히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기업의 접대비를 더 생산적인 곳에 쓰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기업이 법인카드로 결제한 접대비는 10조원에 달했다. 룸살롱 등 유흥업소에서 쓴 돈만 1조원을 넘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올 4분기에 내수가 위축될 수 있지만 경제적 불확실성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며 “부패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미/강진규/노정동/이승우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