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3당의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모두 끝났다. 이번 교섭단체 대표 연설 내용을 보면 여야 할 것 없이 3당의 정치적 이념이 일제히 더욱 좌경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기업정책 부분이다. 여야 3당이 한목소리로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촉구하며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태를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격차 대부분이 대기업의 부도덕한 영업관행에서 기인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의 공은 철저히 외면한 채, 부정적 측면만 부각한 논리다. 그렇지 않아도 기업활동을 옥죄고 있는 규제가 더욱 강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연설이었다. 그는 “대기업의 부의 집중과 불공정한 갑을 관계가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일감몰아주기나 골목상권 침해도 규제해야 할 대기업의 비정상적인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중삼중 과잉규제 그물을 정 대표는 잘 모르는 듯했다. 그는 또 “재벌 2, 3세들이 편법 상속, 불법적 경영권 세습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감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대기업=악’이요 ‘중소기업이나 골목상권=선’이라는 낡은 도식 아래 대기업만 규제하면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는 순진한 좌경적 경제민주화 논리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거듭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신봉자인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연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재벌 의사결정의 민주화’라는 말도 썼다. 그러나 만일 1주1표가 아니라 1인1표를 의미한다면 이는 자본주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부정하는 중대한 실수다.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미 재작년에 폐지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하겠다”는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의 발언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야 2당의 반기업 정서, 혹은 좌경적 정서에 새누리당까지 가세했다는 것이다. 20대 국회는 그 어떤 견제 세력도 없이 기업규제 법안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낼 게 뻔하다. 박근혜 정부 초기 경제민주화 광풍이 재연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과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구호가 우리 경제를 더욱 깊은 수렁과 침체로 밀어넣었음을 애써 부정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이미 하도급법 공정거래법 가맹점법 등 10여개 법률의 개정을 거쳐 우리 경제를 질식시키는 중이다. 대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중소기업은 기업 규모를 키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자리가 늘어날 리 만무하고 경제가 제대로 성장할 턱이 없다. 그렇게 실패한 경제민주화를 여야 3당이 합심해 다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시대정신이 드디어 합의에 이르렀다고 환영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새누리당이 정확하게 정의당의 이념에 일치됐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는 정당들의 의견일치가 아니라 새누리당의 무능과 무정견에 다름 아니다.

불평등은 놀랍게도 전두환 정부 때 가장 적었다. 기업활동 자유가 보장되면서 일자리가 크게 늘었고 일자리가 사회적 불평등을 줄였다. 지금 정치권은 거꾸로 하고 있다. 경제를 죽이고 일자리를 줄이고 불평등이 늘어나면 다시 기업을 옥죄는 어리석음의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새누리당이 이념적 무정부 상태에 빠진 지금, 자유와 시장원칙을 지켜낼 정치세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경제살리기 법안이나 노동개혁은 물 건너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증오에 가득찬 기업 규제법들이 또 넘쳐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