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은 규제의 옥상옥(屋上屋)
지난 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2016 자본시장 콘퍼런스’에서 한국거래소는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기업공개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내 상장요건을 충족한 1만여개 기업이 국내 상장을 기피한다든지, 넥슨의 2012년 일본 도쿄거래소 상장, 쿠팡의 나스닥 상장 추진 등은 거래소 성장이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과감한 혁신과 변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거래소의 성장정체를 이런 원인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지난달 경남에너지가 자발적으로 상장 폐지했고, 태림페이퍼도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두 회사의 상장폐지 이유는 공교롭게도 상장 유지의 실익이 적거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같은 국내 상장 기피나 상장폐지 추진, 해외 유수 거래소에 상장하려는 기업은 계속 출현할 것 같다. 국내 상장기업의 부담이 앞으로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확정·시행될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 개정(안)’을 살펴보면 이런 국내 상장기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해준다.

헌법재판소는 회사법상의 여러 원칙은 법률상의 원칙이어서 공공복리에 의해 입법정책적으로 제한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기존 제도를 수정하는 새로운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히 치열한 논증과 공방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그럼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어떤가. 엄격히 말하면 모범규준은 국회가 만든 법이 아니어서 기업이 준수할 의무는 없다. 그렇다면 왜 만들었는지 의문이 든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모범규준은 연성규범에 지나지 않으며, 모범규준은 “준수해야 하되 만약 준수하지 못했다면 설명하면 된다(comply or explain)”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모범규준을 “준수하지 못하면 설명하라”는 것은 사실상 법적인 구속성까지 느끼게 하고 있어 새로운 규제로 볼 수밖에 없다.

모범규준을 기업들이 연성규범이 아니라 사실상 경성규범으로 인식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모범규준으로 인해 기업이 새로운 인력을 채용하거나, 추가 서류작업을 하거나, 별도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면 모범규준은 그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함에도 경성규범하고 차이가 없게 된다. 가뜩이나 상장사가 회사법을 위시해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외부감사법 등의 중첩적인 규제를 받는 상황에서 새로운 모범규준의 시행이 상장사 부담을 더 늘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상장사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범규준은 기존 법령과 조화로워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소개된 모범규준은 현행 법률이나 판례와 충돌하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예컨대 모범규준은 지배주주가 기업과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아 기업과 다른 주주에게 끼친 손해가 있다면 그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주주에게 유한책임을 뛰어넘어 다른 의무나 그로 인한 책임을 부담시키기 위해서는 법률에 의한 명시적인 규정이 필요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기존 결정과 배치된다. 또 모범규준은 회사법에 규정된 것과는 다른 사내이사와 사외이사의 결격사유를 추가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인정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증권시장 개장 60주년을 맞이한 한국거래소는 올해 역대 최대 기업공개 실적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하면서 비상장우량기업에 대해 상장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거래소가 주도적으로 출연해 설립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만들려는 모범규준은 그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우리 기업의 한국거래소 상장기피 혹은 상장폐지 현상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모범규준 중에 초법적(超法的)인 내용을 삭제하는 것이 급선무다.

권재열 <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