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연구원이 어제 세미나에서 소위 복합금융그룹을 새로 지정해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금융의 대형화와 겸업화, 이종업종 간 결합, 금융기술 혁신 등의 확대로 복합금융그룹이 속출하므로 이들의 자본 건전성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은행지주회사와 금융전업그룹 외에 2개 이상의 금융자회사를 둔 일반 대기업 그룹도 복합금융그룹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자산이 5조원 이상이면서 금융자산 비중이 40%를 넘는 삼성, 한화, 동부, 태광, 현대 등 5개 그룹을 고려하는 모양이다. 이런 주장에는 세미나를 후원한 금융위와 금감원의 의중도 반영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참으로 황당하다. 한국 제조업체들이 급기야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게 될 판이다. 이번 보고서에서도 지적했듯 복합금융그룹 문제는 주로 유럽에서 이슈가 되는 것으로, 한국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유럽과는 달리 엄격한 ‘은산분리’로 산업자본은 은행의 지배주주가 될 수 없다. 증권 보험 등 비(非)은행 금융업체조차 사실상 은행 참여가 막혀 있다. 한국에선 유럽식의 복합금융그룹이 될 길이 없는 것이다. 나올 수도 없는 복합금융그룹이 문제될 것이라며 금융감독당국이 제조업체 재무관리까지 관여하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비은행 금융회사를 둔 그룹의 재무 건전성 강화가 필요하다면 주거래은행을 통해 관리를 강화토록 하면 그뿐이다. 동양그룹이나 LIG 사태가 거론되는 모양이지만, 금융당국이 이들의 위기 징후를 몰라서 벌어진 일이라곤 보지 않는다. 관리감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전가하려 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핀테크 같은 금융혁신이 너무 늦은 한국 금융이다. 규제를 없애는 것도 모자랄 판에 되레 제조업체로까지 규제 대상을 확대하자는 소리가 나오니 어이가 없다. 모든 정부 부처가 대기업에 올라타지 못해 안달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다 중소기업청이 나서더니 금융감독당국까지 기업활동에 관여할 태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금융 포퓰리즘이 또다시 꿈틀대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도대체 무슨 완장들이 이다지도 설쳐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