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시장의 36.8%에 달하는 최대 자유무역 경제권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탄생을 눈앞에서 지켜만 보고 있다. 통상당국의 정보수집이나 판단능력이 총체적 위기에 처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가 규모에 비기면 사실상 최대 무역국가인 대한민국의 통상외교가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다는 것인가.

산업통상자원부는 TPP 타결 소식에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입을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입장이라고 내놨다. 전략적 판단 미스와 실기, 그로 인해 치러야 할 값비싼 수업료에 대해 반성하는 이가 없다. 오히려 정부는 “TPP 당사국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둘러대기에만 바쁘다. TPP와 관련한 질타가 쏟아질 때마다 늘 하던 변명이다. 대체 정부는 어느 나라와 뭘 접촉하고 있다는 건가. TPP 당사국 중 일본, 멕시코를 뺀 10개국이 한국과 FTA를 맺고 있다며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한 건 정부였다. 정부는 이렇게 온갖 불명확한 언어들만 쏟아냈다.

한·중 FTA에 일이 많아 챙길 사람이 없다며 미국의 참여 제안을 걷어찼던 정부다.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 말의 레임덕 탓으로 돌리지만 이 역시 변명이다. 현 정부에서도 기회가 있었지만 실기하고 말았다. 정부는 TPP가 한·중 FTA와 별개인 것처럼,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협상에 참여할 것처럼 떠들었지만 결과는 전혀 아니었다.

뒤늦게 워싱턴으로 날아가 미국에 참여를 호소했지만 돌아온 건 끝난 뒤에나 보자는 답변이었다. 가장 높은 수준의 FTA 운운하더니 가장 낮은 수준의 FTA로 끝나버린 한·중 FTA에 치중하다 더 큰 시장인 TPP를 날려버리면서 기존의 한·미 FTA조차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게 새로운 통상 패러다임 운운하며 조직 개편까지 단행했던 박근혜 정부 통상외교의 진면목인가. 한국 통상외교는 길을 잃고 말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TPP 타결 성명에서 “중국 같은 나라가 국제무역의 규칙을 정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그 중국에 매달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