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국, 수산물 수입금지 풀어라" WTO에 제소…정부 "한일관계에 또 찬물"…유감 표명
일본 정부가 일본산(産) 수산물에 대한 한국의 수입 규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키로 함에 따라 한·일 관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일본은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자국의 수산물 수입을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2년 가까이 가시적인 완화조치를 취하지 않자 WTO 제소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가 WTO 분쟁으로 번진 것은 한·일 관계에 또 하나의 악재다. 다음달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앞두고 이번 주말엔 한·일 재무장관 회담과 한·일 통상장관 회담이 연달아 열릴 예정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들 장관 회담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해빙 조짐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일본의 갑작스러운 WTO 제소는 이런 전망을 무색하게 했다.

◆日, 한국을 희생양 삼아

한국 정부는 원전 사고가 터진 후쿠시마현 외에도 주변 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이바라키 지바 도치기 군마 등 8개 현에서 나오는 수산물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후쿠시마 주변 지역에도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후쿠시마에서 생산되는 모든 식품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작성한 방사성물질 검사증명서를 요구하고, 그 외 지역에 대해서는 버섯류 등만 증명서를 요구하는 유럽연합(EU)과 호주 캐나다 등에 비해선 강한 조치다. 하지만 주변국인 중국이나 대만에 비해선 약한 규제다.

중국은 후쿠시마 주변의 군마 도치기 이바라키 등 10개 도·현에서 생산되는 모든 식품 및 사료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10개 도·현 외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소 우유 과일 수산물 등도 일본 정부가 증명한 방사성물질 검사증명서와 산지증명서를 함께 요구한다. 대만 역시 후쿠시마 이바라키 도치기 군마 지바 등 5개 현에서 생산된 모든 식품(주류 제외)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고, 5개 현 이외에서 생산된 과일 채소 수산물 해조류 유제품 생수 등에 대해서는 전수검사를 하다가 이달 15일 일본의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계속 요구한 수산물 수입 규제 완화 조치를 한국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내년 총통 선거(대선)를 앞둔 대만이 규제를 더 강화하자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 냉각 우려

정부는 일본의 갑작스러운 WTO 제소 방침에 대해 “수산물 수입 규제 완화나 양국 관계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산물 규제 완화 움직임을 보였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일본 정부에 비공식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WTO로 가면 한국 정부는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1997년 일본은 과수 피해를 유발하는 코들링 나방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사과 등 미국산 농산품 8종에 대한 수입을 금지했다가 WTO에 제소됐다. WTO는 당시 ‘수입 금지국이 위해성에 대한 과학적 증명을 해야 한다’며 제소국인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 수산물 수입 금지 규제도 한국이 위해성 입증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쉽게 풀 수 있는 방법을 놔두고 일본 정부가 갑작스럽게 WTO에 제소하기로 했다”며 “특히 한·일 주요 장관 연쇄회담을 앞두고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